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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오테카 라우렌치아나

‘중세 예능을 읽다‘라는 제목을 듣고 처음에는 제아미世阿弥와 리큐利休, 그리고 꽃꽂이의 이케노보 센오池坊専応 등과 같은 명사 중심의인물 열전 형식으로 풀어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중세 예능에 대한통상적이지 않은 문제나 주제를 설정한 후에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쪽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권진勸進‘ ‘천황제天皇制‘ ‘렌가蓮歌‘ ‘선禅‘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각각의 측면에서 중세의 예능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P11
불상을 만들거나 사원을 세우거나, 신사 건물을 수리하거나 하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행위를 권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권진은 중세에 매우 성행했었지만, 중세 말기에 이르러 세속화되었다. 근세에 들어서는 더욱 심하게 세속화되어 권진이 걸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P14
이와 흡사한 예를 들자면, 일본의 불교에서는 ‘오치고상お稚児さん‘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 제도는 속세의 미소년이 승려 세계로 들어온 것으로, 한반도와 중국, 인도에는 없지만, 일본에서 탄생한다. 아름다운 여성을 대신하여 오치고상이라 불리는 미소년이 스님과 잠자리를 갖고, 스님은 자신에게 속한 오치고상에게 다양한 학문을가르친다. 불교에서는 엄연히 여성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계율이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오치고상 제도를 이용하여 남자를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공공연해졌다. 본래 근대 이전의 일본은 승려의 세계뿐 아니라 동성애에 관해서 매우 관용적이었다.
일본에서는 불교가 변질되어 승려의 세계에서 ‘치고稚児‘의 존재가 어느 정도 제도화되었다. 말하자면 속세가 불교계에 들어와 중간영역을 만들어가면서 승려의 세계를 변화시켜갔다. 권진히지리도 치고와 같은 중간영역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의 일본인은 신성과 세속 사이의 중간영역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매우 능숙했다고 생각한다.- P1920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교도란 모두 무연의 존재여야 한다. 석가모니도 국왕의 지위를 버리고 세상과의 연을 끊은 무연의 인간이 되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기 때문에 불자는 모두 무연이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 일본의 경우는 ‘진호국가鎭護國家‘ 불교로 국가 봉사를 위해 불교를 인정했었던 경위가 있으므로, 불교도를 국가공무원으로서 간주하게 된 역사는 깊다. 하지만 그뿐아니라 천태종天台宗의 히에이잔比叡山, 혹은 진언종眞言宗의 세계 등에서 장남에게는 귀족 집안을 잇게 하였지만, 생계를 잇기 어려운네, 다섯 번째 정도의 아들은 사원에 취직시켜서, 사원에서 일하며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헤이안중기가 되면 히에이잔이나 진언종의 세계도 귀족들의 대부분이 세력을 부리며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사원이 귀족의 사적인 소유물과 같은 장소가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P21
‘짓코쿠히지리十穀聖‘가 권진히지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며, 그 짓코쿠히지리의 기원이 죠겐重源이라고 하는 인식이 중세의 염불계 승려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 짓코쿠히지리란 열 종류의 곡식을 끊고 수행하는 승려를 일컫는 말로 산간 수행자이다. 예를 들면, 하코네箱根에 있는 짓코구 고개十穀峠라는 것도 열개국을 전망한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짓코쿠히지리의 왕래와 연관된 장소라고 생각된다. 권진히지리를 곡기를 끊은 산간 수행자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그 권진히지리의 기원이 죠겐이라고 보는 것이다. 죠겐 자신은 귀족 무사인 기紀씨 가문 출신이다. 일족에 다키구치滝口나 우마노죠馬充, 에몬노죠衛門尉가 많으므로 무사 출신이라 여겨지고 있다. 이는 고미 후미히코五味文彦도 주목하고 있듯이 사이교西行의 출신과 가깝다.- P2324
하지만, 죠겐의 아미타 신앙은 고야산高野山 계통이다. 고야산에서는 가쿠반覚鑁이라는 사람이 원정기院政期 중기쯤에 등장하여 밀교와 아미타 신앙을 융합하는 새로운 교리를 수립하였다. 그 종파가 신의진언종新義眞言宗이며 현재는 나리타산成田山의 신쇼지新勝寺와 가와사키다이시川崎大師라는 사찰로 이어졌다. 가쿠반 교리의 새로운 특색은 대일여래大日如来를 중심으로 하는 밀교 세계에 아미타신앙을 접합시킨 점이다. 대일여래란 법신法身,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그 자체로써 그것이 실제로 현세에서 고통받는 자를 구원할 때는 아미타여래로서 나타난다고 하며, 염불 신앙과 밀교의 세계를 융합시킨 것이다.- P28
사이교는 일생에 두 번 미치노쿠陸奧(현재의 동북지방)를 여행한다. 마지막 미치노쿠 여행길인 사요노나카야마小夜の中山에서는 "노령의 나이가 되어 이 산을 다시 넘게 될 줄이야, 사요노나카야마를 넘을 수 있는 것은 목숨이 붙어 있는 덕분이구나年たけて また超ゆべしと おもひきや 命なりけり 小夜の中山"라는 훌륭한 노래가 탄생한다. 예전에 지나갔던 시즈오카현의 사요노나카야마에서 스스로의 생명의 연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하는 내용의 노래를 읊은 것이다.- P29
십몇 년 전에 ‘신안선 침몰‘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한반도 남서쪽 해안의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던 배를 발견하여 인양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는 1323년에 침몰한 배였는데, 인양 후에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유물 명부에서 ‘권진히지리 교센勸進聖教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아미노 요시히코는 이 배가 도후쿠지 조영을 위해 권진히지리 교센이 탔던 무역선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침몰선은 배 바닥에 대량의 동전을 싣고 있는데, 대량의 동전은 배의 안정을 유지함과 동시에 그대로 동전 수입이 되기도 하는 이중의 효용이 있었다.- P34
당시에는 여러 설교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고칸시렌虎関師練이라고 하는 선종의 승려가 지금의 설교는 ‘변태백출変態百出‘의 모양라고 말하며, 진실을 예능으로 속이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지넨거사의 경우는 격식 있는 설교, 다시 말해 창도唱導라고도 하는데, 그러한 설교의 장에 사사라佐々良 설교 계통인 민중 가무를 들여왔다. 그림(’덴구조시天狗草紙’)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지넨거사의 노래 문구로, 그는 노래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넨은 단지 춤을 추는 것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며 가무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설교사는 상좌에 앉아 설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의 라쿠고落語 예인이 앉았던 방석 한 장이 상좌의 자취인데, 이 상좌에서 툇마루의 평평한 곳으로 내려와 민중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대담하게도 민중의 가무를 넣어 설교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설교가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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