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말 잘 듣는 개로만 받아들여져도 곤란하다. 개를 기르는 사람은 말을 듣지 않는 개를 길들였을 때 더 좋아하니까.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P24
이 드넓은 우주에서 통일된 하나의 행성이나, 몇 개의 위성 거주구 따위를 묶은 연합체, 성계 동맹 따위를 제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천 광년 단위로 떨어진 수백 수천 성계들을 하나의 권위 아래에 놓을 수 있어야만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문은 머나먼 별들 사이를 넘나들게끔 하지만 관문선이 닿지 않는 머나먼 미답지들은 제국의 통제 밖에 놓여 있다. 지구의 정신과 문명을 잃어버리고 미개하게 단절된 선주민들을 제국은 다시금 포용할 의무가 있기에, 황제 폐하는 대원정을 결정했다. 대원정의 방법은 단순하지만 확실했다. 황제 폐하의 목소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다면, 그들에게 황제 폐하와 그 심복들을 복제해서 제국 밖으로 보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통치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통치한다면 그 또한 제국이니까.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P2627
기대했던 대로 남자는 박투술에 익숙하지 않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남자는 총을 버리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총을 가지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총구가 당장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P3839
일인칭의 원한은 이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하다.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P50
그리고 포이페는 아일랜드어로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길상우는 포이페 켈리와 메르센 켈리가 쌍둥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둘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것도 어쩌면 우주의 법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을. 왜 진작에 포이페를 붙잡고 캐묻지 않았을까.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포이페는 사라졌고두 사람을 찾을 단서는 아일랜드라는 국적이 전부였다.
길상우의 발상이 빛이 난 부분은 그다음이다. 메르센 소수와 완전수를 따서 쌍둥이 딸의 이름을 지었다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쪽은 딸이 아니라 아버지인지도 모른다. 길상우는 켈리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모든 논문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기는 최소 30년 전, 분야는 물리나 수학일 것이다. 상우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만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로레인 켈리,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989년에 ‘무아레 현상을 이용한 플랑크 단위 미시구조의 탐색‘이라는 주제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다가 로레인은 아직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상우는 홀린 듯 휴가를 내고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남세오, 벨의 고리)- P9899
"사적인 이야기가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저는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이 궁금합니다. 무아레 현상과 플랑크 단위에 대한 논문 말입니다."
"오. 세상에! 가족 문제에 이어 이번에는 30년 전에 쓴 학위 논문까지 들추겠다는 건가요? 대체 이 늙은이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이유가 뭐죠?" (남세오, 벨의 고리)- P102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의 구조는 난수가 적힌 난수표다. 그게 숨은 변수가 적힌 양자의 비밀문서다. 우리 우주에 진정한 난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로 난수를 생성해 본 사람은 시작 지점이 같으면 항상 같은 순서로 난수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에는 무작위로 숫자를 고르는 능력이 없다. 시작 지점과 불러오는 규칙을 알려 주면 커다란 난수표를 찾아가며 숫자를 고른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양자 현상의 불확실성은 무작위가 아니라 우주의 난수표에 의해 결정된다. 상자 속의 양자가 빨간색일지 파란색일지는 이미 난수표에 적혀 있다. (남세오, 벨의 고리)- P106107
포니아가 뫼를프의 말에 동의하며 악수를 하는 동안, 하랑은 눈을 감았다. 새파란 빛의 공허 속에서 거대한 화구가 타오르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갈고리 물체가 빛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고개를 돌리니 공허를 떠도는 크고 새하얀기 같은 존재도 보인다. 시선을 내리자 완전히 녹아내린 바다의 표면이 보인다. 바다의 표면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색일까? 어떻게 움직일까? 하랑은 머릿속에서 논리를 지우고 낮추고 직감과 즉흥에 상상의 광경을 맡겼다. 그러자 검푸른 액체로 된 산과 언덕, 계곡이 나타나서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얼음이 사라진 바다였다. 새파란 산이 언덕 위로 무너지고 계곡이 갈라질 때마다 새하얀 무언가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먼지일까? 얼음? 자그만 공기 방울?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광경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랑은 상상을 멈추지 못했다. 그때 상상 속 바다의 표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표면을 찢고 나와 공기 중으로 솟아 오른 것은 거대한 세뿔고래였다. 세뿔고래는 무사히 적응을 한 것이다! 하랑은 기뻐하며 세뿔고래가 몸의 빛깔을 화려하게 바꾸는 모습을 감상했다. 세뿔고래는 공기를 잠시 맛보고는 중력을 따라 다시 바다의 표면을 웅장하게 찢으며 사라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밀어 멀리 떨어진 마른 땅을 바라봤다. 바다 아래만 해도 놀라울 만큼 다양한 풍경이 있었다. 마른 땅의 세상에서는 얼마나 놀랍고 다양한 광경이 펼쳐질까? 그곳에서도 동물과 식물이 살 수 있을까? (해도연, 거대한 화구)- P196197
세상에 적합한 희생이란 없었고 문명이 고도화를 이룰수록 더더욱 그러했으므로. (이하진, 지오의 의지)-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