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도 까도 또 나오는 마트료시카 인형 같다 생각을 했다. 아니었다. 인형은 크기만 다를 뿐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이다. 이 이야기는 그와는 다르다. variation이라고 해야 할까 diversity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 떠오른 하나의 단어는 바로 '변주곡'이었다. 하나의 주된 모티프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가지로 바꾸어 가는 곡을 일컫는 말. 작곡가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새로운 창작의 끝을 보여주는 그런 곡 그래, 이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변주소설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이 - 본문에서는 서캐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라는 해충을 통해서 질병이 일어나고 그것이 전염되며 좀비화를 일으키는 이야기다. 좀비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영화 <좀비딸>이 바로 연상되며 매개체는 다르지만 [야행성 동물]이라는 소설이 같이 묶여서 나온다. 전염이 되는 과정, 대응책 그리고 신약 계발을 하는 과정은 코로나 대응을 반영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선영은 그 중심에 서 있는 과학자다.
기본 이야기를 그대로 둔 채 이야기는 다른 하나의 갈래를 슬그머니 내민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잘 사는 집안의 학부모 모임에 끼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배경음악이 바로 자동 재생된다. 그런가 하면 선영이 오래 전 서캐화가 되었다가 흔적도 없어진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내려가서 그 지방에서 굿을 하는 장면에서는 박해로 작가의 소설들이 떠오른다. 오컬트와 호러와 sf, 게다가 좀비소설에 디스토피아까지 정말 다양하게 장르를 넘나들고 있지만 그것이 부산스럽지 않고 따로 놀지 않는다. 여러 재료가 한데 모여서 호화스러운 맛을 추구하는 잡채 같달까.
장르소설이란 두꺼울수록 좋다를 외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되어야만 좋은 법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재미가 없고 두껍기만 한 경우 언제 다 읽지 하면서 남은 페이지를 헤아려보기 십상이니 말이다. 변주곡은 테마가 따로 있어서 더욱 재미를 준다. 이 이야기 또한 그러하다. 나누어진 갈래 하나하나가 다 특징이 있어 빠져들어 읽다보면 어느 틈인가 그 가지의 끝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8백 페이지에 육박한다. 빠져드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치료제 계발을 위해서 노력하는 선영이 중심인물인 만큼 전문성 있는 대사들이 초반부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작가의 전직이 혹시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쪽 계통에서 일을 하셨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수많은 자료 조사를 했음에 틀림없다. 상상으로만 메꿔질 수 있는 대목이 아닌 까닭이다. 철저하게 믿고 있었던 사실이 뒤집어지는 후반이 압권이다. 중간중간 드라마적인 부분을 주어 강약을 더하면서도 후반부에 몰아치는 돌풍이 꽤나 거세다. 단순한 패턴인 줄 알았던 표지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이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존재지만 70년대만 해도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서 이를 잡았던 그런 때가 있었더랬다. 표지와 소재와 이야기가 하나로 맞물려진다. 그 모든 하모니가 이루어내는 합이 새로우면서도 글에 대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도서출판 파란문어 미스터리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다. 다른 지옥을 맛보고 싶어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