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갈 때마다 일본 소설 코너에서 보이는 두꺼운 책이 있었다. 그것도 두 권으로 구성된 책. 몇번이나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들던 그런 책이었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이 텐도 아라타이다. 텐도 아라타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 것은 아닌데 이 책은 내가 걱정하던 그런 류의 근심을 싹 씻어준다.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눌러주는 것으로 유명해서 분명 알고는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내가 읽은 책은 [영원의 아이]와 [애도하는 사람]이었고 후자가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은 다르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인해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끝났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만큼 몰입감이 대단한 그런 소설이다.
한 구의 시체가 발견이 된다. 남자다. 알몸이다. 묶였다. 검시를 행한다. 별게 없다. 단지 사인만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스톱. 그 피해자를 보던 형사 시바가 이야기를 한다. 왜 강간검시는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만약 시체가 여자인 경우에 더군다나 알몸으로 발견이 되었다면 필히 행해졌을 검사였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실제로 검사한 결과 항문에서 보지 못했던 증거를 찾아낸다. 눈에는 눈. 이 글귀를 본 피해자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절했다.
이 책을 읽었던 읽지 않았던 잘못된 일이라면, 잘못한 일이라면 그냥 사과 좀 하자. 그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사죄하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듣지 않는가. 만약 처음 사건이 발생을 하고 그들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진정어린 사죄를 했더라면 이 모든 일은 필히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해자들은 사과는 커녕 뉘우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부모가 감싸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일을 빨리 끝내놓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들의 머리 속에는 대체 뭐가 든 것일까.
예전에는(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성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아들의 부모들은 딸의 부모들에게 큰소리친다고 한다. 우리 아들도 잘못이 있지만 당신에 딸이 꼬드겨서 그렇게 된거라고 말이다. 옛말에는 딸가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분명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왜 여자라는 이유로 숨어서 살아야 하고 당당하지 못해야 하는가. 가해자들인 남자들은(요즘은 역으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도 모르고 당당하게 구는데 말이다. 본문에서는 남편을 부르는 단어를 고치라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서 남편을 주인이라고 칭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왜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는가. 아내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말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단어가 자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굵직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시바와 구라오카라는 특징적인 캐릭터로 인해서 확 재미가 붙는다. 서로 다른 캐릭터가 주는 케미다. 거기다 요다까지 더해지니 삼합이 아주 짝짝 들어맞는다. 이 캐릭터들 여기서 한번만 써먹기는 너어무 아깝다. 다른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되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