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여 페이지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이 이야기는 몰입도가 대단한 소설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해서 그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역사소설로 보아도 되지만 살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보아 미스터리 스릴러로 보아도 충분하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소재다. 독초 전문가 구희비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독초라는 소재를 자유자재로 부리고 있다. 발생한 죽음 역시도 독초와 관련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희비는 쑥과 비슷하게 생긴 독초를 잘못 먹은 사람을 살려내기도 하지만 그녀의 가족 역시도 그 독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했다.
본문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사건이 벌어진다. 하나는 백오교의 죽음이다. 다른 하나는 한달 후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미카엘의 죽음이다. 희비는 사토가에서 보내온 부탁을 받고 시신을 살펴보러 간다. 새로 그녀의 비서가 된 차돌과 동행한 채로. 그곳에서 그녀는 자비초에 중독된 채 죽은 시체를 본다. 유서까지 있는 걸 보면 자살인듯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미카엘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일본 사람들이 등장을 하고 그들이 우위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은 식민지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그 밑에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부글거리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독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살인사건을 풀어내고 있어서 스릴을 더하고 있며 그 과정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져 속도감을 꾀한다.
범인에 대해서는 앞부분에 이미 떡밥을 던져놓은 상황이라 조금만 유심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금방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 모든 과정이 흥미롭게 이루어져 늘어지지 않고 맥이 풀리거나 하지 않는다. 벌어진 부분을 곱게 잘 기워내어 마지막까지 잘 마쳐서 실땀이 겉으로 보이지 않는 공구르기를 한 그런 상태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청소년문학상이라고 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만 쓴다는 내 좁디좁은 편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놓치지 않은 것이 더욱 반갑다. 이런 몰입감을 주는 이야기라면 나는 얼마든지 더 읽어주리라. 단지 구희비 박사와 차돌의 캐미가 이렇게 끝나 버리는 건 아쉽다. 같은 주인공으로 시리즈로 가면 어떨까 하는 나의 작은 바람을 작가님은 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