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르소설가들의 작품을 한 권으로 만끽할 수 있는 앤솔러지가 비채에서 나왔다. 사실 앤솔을 막 크게 환영하는 편은 아니지만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여러 작품들이 모여 있는 특징이 있어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은 확실히 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보면 조영주 작가가 먼저 나서서 다섯 명의 작가들에게 함께 하자고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읽었던 앤솔러지는 조영주 작가가 주축이 된 작품이 많긴 한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작가들이 자신의 직업군을 반영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바리스타나 기자 등 자신의 현직이나 전직 직업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해병대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서문에서는 십자가를 주요 테마로 잡았다고 적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십년 전 있었던 십자가 사건이 그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자살로 결론지어졌던 사건이었다. 한 남자가 십자가에 달린 형태로 죽음을 맞았다. 어떻게 혼자서 그런 형태로 죽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경찰에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최종 자살이라고 결론을 냈고 그래도 여전히 미스터리 하다. 그런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지를 쳤다.
첫번째 이야기는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적은 듯이도 느껴진다. 앤솔러지를 준비하던 나는 영감을 찾아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증상들과 치료과정에서 있었던 일들 사실감이 도드라지는 이야기다. 두번째 이야기는 딸을 잃은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이런 설정은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에서도 본 듯 하다. 딸이 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되자 아버지가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다. 얼마전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세부적인 설정들이 비슷하게 여겨졌다. 세번째 이야기는 최근 [촉법 소년 살인사건]으로 다시 보게 된 전건우 작가의 작품이다. 십자가 사건을 조사하는 작가와 편집자가 주인공이다. 다른 책에서 편집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생경한 느낌이 들면서도 신선한 접근이었다.
네번째 이야기는 뭐라 하나로 규정하기가 참 어려웠다. 찾아보니 내가 이 작가의 책을 다섯 권이나 읽었더라. 제일 처음 읽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어서 그것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임당, 그리움을 그리다] 같은 따스한 작품도 읽어본 적 있었다. [나쁜 하나님]이나 [반인간선언] 등 다른 작품들은 조금 어렵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그런 느낌이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성경 상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다섯번째 이야기는 두 개의 십자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취재하고 기자가 등장을 한다. 세번째 사건은 발생을 할까. 마지막으로 <파츠>라는 독특한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이야기는 일단 제목부터 궁금해지게 만든다. 사람을 하나의 파트로 본다는 설정이 독특했다. 시간마다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선택을 받은 자들의 죽음. 그들은 과연 선택을 받은 것일까 저주를 받은 것일까.
여기 나온 여섯 명의 작가들의 다른 작품을 다 읽어본 적 있다. 나와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은 작가도 있었다. 작품들이 다 작가들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누가 봐도 아 이 작가의 작품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그런 특색있는 작품들을 하나의 책에서 만날 수 있었서 개인적으로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