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전에 먹었던,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다시 먹는 맛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익히 눈에 익었던 글밥이기에 오랜만에 읽어서 더욱 반갑고 그 맛을 알기에 더욱 맛있고 그래서 흠뻑 빠지게 되는 맛이다. 진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그런 거 아는가. 진짜 친한 친구라면 일년에 한번 봐도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만나는 냥 오랜만에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거 말이다. 마지막으로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을 읽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친구같은 느낌은 여전했다. 결론은 빠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12월 7일 토요일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12얼 20일 금요일 사건이 마무리 되기까지 십삼일 동안 숨가쁘게 달려나간다.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디 한 곳 물샐 틈 없이 빡빡하게 흐른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비롯해서 그들 강력 11반의 모든 팀원들의 힘듦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는 소리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수사가 답보상태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사건이 더욱 그 반경을 넓혀가면서 그들이 지치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같이 느낄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빠지게 하는 마력 중에 하나다.
약사인 안네. 딸인 리시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그냥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예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 목소리만 흐른다. 십대의 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핸드폰이 아니던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던 아이는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안네는 사라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만 사라는 아빠랑 여행을 갔으며 리시가 자신의 집에서 잔 것이 아니라는 답변만 받는다. 아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십대 시절 엄마와 싸우고 집을 안 나가본 아이가 있을까. 모든 청소년들이 다 가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네 집으로 잠시라도 피신을 가 본 적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커서 이십대 초반이 되어도 부모의 걱정은 줄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를 팔아서 서로의 알리바이를 커버해주면서 일종의 탈선을 잠시 꿈꾼다. 그런 것들이 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이 범죄와 연결이 된다면 부모에게는 자신의 자녀를 잘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남기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강력11반에서 맡은 이 사건은 증거를 조사한 결과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유전자가 피해자의 몸과 옷에서 나온다. 경찰에서는 당연히 그를 증인으로 데려와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조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단서들은 슬며시 어디론가 새어버리고 언론에서는 특종을 잡은 것처럼 보도하고 사람들은 피냄새를 맡은 상어마냥 당장 범인잡기에 혈안이 되어 버린다. 아직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그 사람이 평범한 일반 사람이었어도 그랬을까. 난민이라는 그것도 아프가니스탄 난민이라는 전제가 붙어서 더욱 그렇게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막상 그를 데리러 간 곳에서 경찰들은 그를 찾지 못한다. 리시에 이어서 또 사라진 한 사람. 그들은 어디로 자꾸 사라지는 걸까.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흘러가며 기존의 사건에 연결해서 더 큰 사건으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할 피해자도 생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기에 작가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려고 그러는가 싶어 걱정도 된다.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제일 처음 <9일 뒤>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짧은 이야기는 1권의 가장 마지막 부분과 연결된다. 리시와 가장 친했던 사라는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은 이 사건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