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무명씨
  • 청과 부동명왕
  • 미야베 미유키
  • 16,920원 (10%940)
  • 2024-09-06
  • : 18,327

청과 부동명왕, 단단인형, 자재의 붓,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까지 짧은 설명을 한 편집자 후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이 단순히 관련 없는 네 편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서장에서는 흑백의 방이 생기고 오치카에 이어 도미지로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렇다. 이것은 두번째 청자를 맡은 도미지로가 들은 이야기들이다. 전하는 사람은 각각 다를지라도 말이다. 이번에는 어떤 기이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본가인 미시마야로 돌아온 첫째 이이치로. 둘째였던 도미지로는 가업을 물려받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마음 편한 상태랄까. 이이치로의 이야기가 전에 나온 적이 있었었나. 없었다면 나중에 한번 다루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한테 잡혀서 모델을 하고 있던 도미지로는 스님을 한 분 보게 된다. 오치카도 알고 있던 교넨보님이다. 그 승려의 소개로 흑백의 찾아온 손님의 이야기가 바로 표제작인 <청과 부동명왕>이다. 밭에서 찾아낸 부동명왕을 닮은 우린보 님을 업고 온 이네. 그녀가 사는 곳은 동천암이다. 온갖 일을 겪은 여자들이 모여 사는 곳. 별별 일이 다 있어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을 위한 쉼터라고 생각하면 될까. 답답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 오나쓰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면서 그 당시 여자들을 향한 사회적인 편견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편집자 후기에 굉장히 무섭다고 미리 공표한 두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막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는 아니라고 느겼다. 분명 다른 누군가는 또 다들게 느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오치카는 고우메를 무사히 낳았고 흑백의 방에서 괴담 이야기를 듣는 일은 재개되었다. 이번엔 온 손님은 이이치로가 몸 담고 있었던 히사야의 단골손님으로 도미지로하고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 그들은 말을 놓으면서 편하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이야기. 좋은 다이칸이 있었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마을이 쑥대밭이 된 이야기는 어떠게 보면 악독한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 같아서 그런 현실성이 무섭기도 하다. 사람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장면은 무섭다기보단 저렇게 행하는 나쁜 넘에게 대적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이해되어 화가 났고 나중에 단단인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가능성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그런 말처럼 어쩌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짧은 이야기인 <자재의 붓>은 한 화공의 붓에 관한 이야기인제 도미지로는 이것은 그림으로 남기면서 더이상은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버린다. 그림과 도미지로는 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는 어떤 식으로 흑백의 방의 이야기를 듣고 잊을까. 마지막 이야기인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고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모두가 나들이를 가고 부상으로 혼자 남은 도미지로는 찾아온 오른팔이 없는 한 사람. 화공을 동경했다는 그는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가 살았다는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바늘비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가장 마지막에 알고 나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그 마을이 다시 보이게 된다. 괜히 이름을 바늘이라고 붙여 놓은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수 아니 두 수 앞을 내다 보닌 작가의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네 편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어서 여러가지 맛이 한 박스에 담긴 도넛 세트처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오치카는 아이를 낳았고 이이치로는 돌아왔고 그림을 그리지 않겠노라고 생각한 도미지로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흑백의 방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집자 후기에는 다섯가지 호러의 효력이 나온다. 왜 소설을 읽는지 왜 호러를 읽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아마도 가장 적확한 설명을 해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장르 소설을 좋아하고 오늘도 호러를 읽는다. 그리고 또 새로운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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