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영의 소설은 왠지 모르게 온다 리쿠의 느낌이다. 내게는 그러하다. 무언가 명확히 구분지어지지 않고 모호하고 몽롱한 느낌이랄가. 작가의 책의 이야기들이 그런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내 느낌일뿐이다. 작가의 소설이 온다 리쿠처럼 판타지적인 느낌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온다 리쿠가 싫은데 하면서 작가의 책까지 미뤄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흥미로우므로 말이다.
몇 권의 책을 간헐적으로 읽었지만 강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았던 것은 북카페의 같이 읽는 모임을 통해서였다. 한 작가의 책을 여러권 몇달에 걸쳐서 읽어가는 일명 '스토킹'을 통해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강지영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어떤지를 느꼈다. 정말 말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읽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간혹 신작 소개코너에서 작가의 이름을 봤을뿐 그 책들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살인자의 쇼핑몰], [하품은 맛있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작품은 또 다른 매력을 준다. 한 아이의 일곱번의 출생. 그걸 환생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부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같은 부모 밑에서 똑같은 조건 하에서 계속 다시 태어나고 있으므로 말이다. 다만 자신이 죽을 것을 알기에 매번 그 단계를 넘어가며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마치 게임에서 다음 판을 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죽고 새로 시작하면 그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 때문에 전 판 보다는 확실히 쉽게 대처하고 다은 판을 준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기함을 할 노릇이다. 아이가 조금씩 커서 말을 배우고 해야 하는데 말을 하자마자 유창하게 마구 말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한다면 어떤 부모가 놀라지 않을까. 당연히 부모는 아이를 정신병원에 데려가고 상담소를 데려가고 호들갑을 떨게 마련이다. 그렇게 재이라는 아이는 정소영이라는 심리상담사를 만나게 된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 둘이 어떤 관계로 엮였는지 말이다.재이가 한번씩 죽었다 다시 태어날 때마다 소영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았다면 그랬다면 재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들은 알았고 대비를 했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또는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재이의 평온한 그냥 삶을 자꾸 방해한다. 이 부활이 환생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 뭘까. 징따징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