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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관대 강당당 노무현
  • 황이수
  • 10,800원 (10%600)
  • 2023-03-30
  • : 2,131

이 책을 받고 근 한 달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읽기에 뜸을 들인 것이다. 여느 책 같으면 받은 즉시 독파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을 법하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책은 흐트러진 자세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노 대통령이 직접 쓴 책을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대해 쓴 책도 자세를 가다듬고 나서야 읽었다. 아니, 읽혔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행사기획비서관을 지낸 황이수가 노무현 대통령을 이야기했다. 책 이름이 <노무현>이다. 하지만 이 이름으로 내용을 가늠하긴 어렵다.

지은이는 이 이름 앞에 노무현의 삶을 압축해 놓은 수식어를 배치했다. '약관대 강당당'이 그것이다. 한자로 부언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弱寬大 强堂堂'(약자에게 관대하고, 강자에게 당당하라)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 않나.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 앞에선 나약하기 그지 없는... 이런 흐름을 지금 정치하는 동네에서 주도한다. 정의와 진리가 사라지고 정파의 패권 놀음이 판을 치고 있다.

황 비서관은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참모이다. 본인은 연구소 연구원으로 불러 주기를 바랐지만 노 대통령은 그를 끝까지 비서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영어 personal assistant(비서)는 확고한 신뢰 관계 속에서 돕는 사람을 가리킨다. 황 비서관에 ‘비서’ 내지 ‘참모’로 쉬 부른 것은 그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종 이러한 흐름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약관대 강당당 노무현>(나무의 숲, 2023년 3월 출판)을 두 시간만에 완독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부피가 많지 않다. 신국판 160쪽의 분량이고 글자 크기와 행간도 널찍해 읽기가 편하다.

둘째, 쉬운 단어와 매끄러운 문장이 책에서 눈을 떼지 않게 한다. 지은이의 숙련된 문장력이 돋보인다. 내가 읽으면서 사전을 찾아본 것은 '학익진 대형'(122쪽)이 유일하다. 한자(鶴翼陣 隊形)에서 온 단어로 학이 날개를 편 것처럼 줄을 서 있는 모양을 뜻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냄새 나는 노 대통령이 끄는 매력이다. 황이수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점이다. 서민의 풍모로 표현하고 있는 서민 이미지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능하다.

실제로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귀족 이미지와 맞선 노의 서민 이미지 때문이었다.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은 서민과는 별개의 특별한 존재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 비로소 우리와 같은 사람,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데 환호했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의 야사(野史)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성실한 비서관의 눈을 통한 노무현 알아보기이다. 지은이 황이수는 노 대통령의 좌우명 '약관대 강당당'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27쪽).

가치관 내지 세계관의 합치 없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이런 좌우명으로 살고 정치를 했다고 해도 보좌하는 비서가 타산적이며 개인 이익 추구형이라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황이수가 노 대통령의 좌우명을 자기 것으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책은 여는 글과 닫는 글을 제외하면 33개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지은이는 한동안 백수 생활을 하며 청와대 비서실 복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 복귀를 못했다고 적고 있다.

그때 찾은 곳이 백담사였다. 그곳에 걸려 있는 장작 패는 전두환 사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144쪽). 백담사는 독립선언서 33인 서명자 중 한 분이면서 민족시인으로 잘 알려진 한용운의 채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독립선언서 33인, 이 책의 글 33꼭지... 의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렇게 연결 짓고 보니 나도 모르게 옷깃이 여미어졌다. 민족을 최애로 생각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에 붙들려 있어서일까. 자기도 모르게? 나만의 생각이다.

황 비서관은 노무현과 함께 하는 오랜 기간 언론을 담당했다. 홍보 베테랑이다. 그의 입을 통해 전해 오는 그들만의 은어도 흥미롭다. '비서 쪼가리'(15쪽), '주먹말'(19쪽), '악마의 편집'(30), '땅개'(117쪽)... 등등

이 책은 발표했던 원고를 모아 출판한 것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쓴 것들을 모아 출판했다. 굳이 장르로 묶자면 가벼운 장편(掌篇, conte)이라 할 수 있겠는데,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와 전달의 강도는 여느 논문 못지않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서 쓰고 싶은 것을 다 못 썼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158쪽).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개인이 거기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봐서 후속 글도 기대한다.

내일(5월 23일)이 노 대통령이 가신지 딱 14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의 정치 풍토는 메말라가고 있고 진영 논리 앞에 정의와 진리가 발붙일 틈이 없다. 사람 냄새 나는 대통령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책으로라도 이런 지도자를 만나보자. 황이수의 <약관대 강당당 노무현>은 지도자의 순수한 마음을 만나게 해 주어서 좋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순수해지고 싶은 마음이 출렁임을 느끼게 된다. 기쁘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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