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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문고
  • 그분을 생각한다
  • 한승헌
  • 13,950원 (10%770)
  • 2019-05-08
  • : 393

밤새워 책을 읽기는 오래간만이다. 잠자리 들기 전 짧게는 30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잠을 자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읽다 보니 자정을 지나고 있었고, 더 읽다보니 300쪽을 넘어가고 있었다. 353쪽의 부피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내 눈을 강하게 붙들 거라는 예감을 순간 했었다. 이유가 있다. 지은이 한승헌 변호사는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사람이다. 글 중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소개되지만 시국 사건 변론을 하다가 구속된 적도 있다. 정의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한 변호사는 법조인 중 유려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문학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니, 변호사와 문인이라는 두 영역에 두루 활동 공간을 갔고 있으니 그를 변호사 겸 문인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훌륭한 수필가이다.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은 만남 자체가 깨끗하다. 만나는 상대가 깨끗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깨끗하다. 여기서의 깨끗함은 정의와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것을 한 데 묶어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해 두자.


책 제목이 <그분을 생각한다>이다. '그'가 아닌 '그분'을 책 제목에 포함시킬 때는 사람이 아닌 절대자(神)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그분'은 사람이다. 변호사인 그가 변론을 맡았던 사람들이 많고, 법을 연결고리로 만나 교제한 사람들이 더해진다.


'그분'의 대상에는 문학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승헌 변호사는 법이라는 그물로 그들을 이 사랑의 향연으로 조심스럽게 모셔온다. 약전(略傳)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은 27명에 달한다. 27명이 한승헌에게 '그분'들이다. 한 변호사가 '그분'이라고 할 정도면 독자들도 관심 갖고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27명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뭘까. 출생지가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각기 다르다. 크게 묶어 예술인 법조인  종교인 등으로 대별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종사하는 일이 제각각이다. 여기서 꼭 한 가지 공통점을 뽑아낸다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는 것, 지은이는 이것을 '사서 고생한'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1855년생인 녹두장군 전봉준에서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아우르고 있으니까 기간 상으로 150년이 넘고, 공간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심지어는 금단의 땅 북한까지 포괄하고 있다. 출생 연도 별로 인물을 배치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서사적 묘미까지 맛볼 수 있다. 


한승헌은 예리한 눈으로, 그러나 따뜻한 마음으로 인물들을 그려낸다. 지은이도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27인의 인물들을 두 개의 틀로 그리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물의 시대상황과 삶의 행보를 원경(遠景)으로, 저자가 직접 교감하고 확인했던 인간적 측면을 근경(近景)으로 해서 썼다.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사람을 조망하고 있으니 종횡(從橫)이 정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글 중에는 장례식 조사도 있고 추도사도 있으며, 책 발간을 축하하는 인사의 말 등 발표 장소와 시기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저자가 '그분'이라고 표현한 인물들을 그리워하는 심정만은 절절하다.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이라고 했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허무주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노랫말이다. <그분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그분'들은 그렇기 때문에 허무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이타주의로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의미 있는 한 평생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책 사이즈도 소지하기에 알맞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사륙판 변형(140☓195)이다. 책이 멀어지는 시대를 거스를 수 있는 좋은 매개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피한다. 직접 읽어 보시라. 대신 ‘그분’들의 이름만이라도 알릴 필요는 있겠다. 목차에 있는 순서대로이다. 출생 순서이기도 하다.

 

전봉준 장군, 함석헌 선생, 김재준 목사, 이응노 화백, 신석정 시인, 소설가 안수길 선생, 이병린 변호사, 시민운동가 조아라 선생, 이태영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김관석 목사, 이우정 교수, 김대중 대통령, 김찬국 목사, 송건호 선생, 리영희 교수, 신동엽 시인, 천상병 시인, 인민예술가 정창모 선생, 소설가 남정현 선생, 이어령 교수, 박우동 전 대법관, 박현채 교수, 김상현 의원, 인혁당 사형수 여저남 군, 김경득 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이상 27명)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기를 권하지만 관심 가는 인물을 취사선택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불의가 정의가 되고, 악이 선으로 둔갑하기 쉬운 가치 혼란의 시대에 과거 산소같이 살다 간 선인(先人)들을 만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책이라는 확신으로 독자 제현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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