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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산아래 작은집
  • 로마서
  • 칼 바르트
  • 54,000원 (10%3,000)
  • 2017-08-31
  • : 934

 

이 책을 읽고나서는 다른 책들이 심심해졌다.

 

내 인생의 책을 몇 권 꼽으라면 단언코 이 책이 포함될 것이며 그 중에 제일 첫머리에 앉혀놓을 책이라고 하겠다. (추천서를 쓴 유진 피터슨도 이 책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다섯 권 중 한권이며 그중 제일 좋아하는 책이 칼바르트의 로마서라고 함). 역자가 서문에서 인용한 카프카의 편지글 중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은 얼어붙은 호수를 도끼로 깨드리는 책, 뒤통수를 후려패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글. 카프카가 말한 그런 책이 얼마나 있을까. 이 책은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물론 신학서적이다. 그러나 제목이 로마서인 까닭에 단순한 로마서 주석서로만 이해한다면 절대 오산이다. 로마서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진리, 복음의 핵심을 건드리는 책이다. 책은 어렵다. 읽어내기 까다롭다. 지난 반년의 시간동안 독서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책을 읽는데 바쳤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상당하다. 아마도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럴 것이다. 인간에게 절대 타자로서의 하나님, 죄성으로 인한 유한한 존재인 인간, 그리고 단 한번 계시된 불가능의 가능성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 은혜를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교회의 문제 등, 이런 핵심 주제를 로마서를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다. 첫 장부터 도끼로 정수리를 후려 팬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진정 절대자,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일까? 혹 내 욕심이 만들어 낸 하나님, 우리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편하지만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들로 시작한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는 한국 신학계에 여전히 논쟁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 앞에 한국교회는 먼저 답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인간들이 제멋대로 만든 하나님,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만들어진 하나님을 앞세우고 그저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번역의 중요성이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비교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20년 전에 한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번역판을 어렵게 따로 구입했다. 그러나 그 책은 번역서라고 하기에는 참 민망한 수준의 책이 아닌가 싶었다. 말이 번역이지 바르트의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수준이어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손성현 목사가 번역한 이 책은 짧은 안목으로 생각해도 가히 탁월한 번역서가 아닐까 싶다. 역자가 바르트의 문장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뒤에 다시 정확한 어휘를 골라내어 유연하게 번역해 낸 것 같다. 그렇더라도 책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낭독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구절씩 따로 떼어내어 깊이 사색하고 읽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내어 길게 낭독해가는 즐거움이 있다. 바르트의 원문을 알수는 없지만 번역문이 참 리드미컬하다. 참고로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될 성싶다. 이를테면 로마서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8장에 대한 부분만 읽어도 바르트가 로마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주제, 유사한 문장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부분은 다소 중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너무 아름다운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 칸트나 니체같은 사람들로부터 루터까지 등장인물도 무수히 많다.

 

이 책은 그냥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성경과 함께 옆에 두고 반복적으로 읽어도 전혀 진부하지 않을 도끼와 같은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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