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곤파스가 한반도 중부를 강타하였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들은 어쩔줄 모르고 뒤뚱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도 가지들이 부러져 산너머로 날아갔으며 잎들은 회오리쳐오른 바람에 날려 마을 아파트 놀이터 한구석으로 모여 들었다. 거리의 간판들은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바람에 내동댕이쳐저 길을 막아버렸고 쓰러지는 가로수에 맞아 안타깝게 숨을 거둔 사람도 있었다.
그 혼돈의 와중에서도 손에서 놓치 못하고 빠져들어 읽어 버렸던 책 '백년의 고독'의 무대인 마꼰도에서는 마침 몰아닥친 혁명과 자본의 태풍이 마꼰도 마을과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을 수차례 들었다 놨으며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버리거나 자신만의 깊은 고독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었다.
중남미의 밀림 어디, 신화속의 태초의 마을처럼 시작된 마꼰도에서의 부엔디아 가문의 삶. 6대에 걸쳐 짜여지고 뒤틀리면서 만들어지는 가혹한 현실과 미래와 암울한 예언들, 마을의 안과 밖에서는 저주와 음모와 반역이 계속되는 가운데 개인과 가문의 삶은 고독속에서 흰개미들에게 갉아먹히는 집의 기둥들처럼 스러져간다.
은유와 풍자가 활기넘치는 시장의 언어들처럼 물결치고, 성욕과 관능 갖가지 탐욕들이 진창의 미꾸리들처럼 꿈들거리는 마꼰도,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언제나 어두움 직전의 간신히 남은 빛처럼 혹은 비오는 산모퉁이에 서있는 검은 말처럼 적막하고 고요하다. 고목처럼 늙었거나 베고니아의 노란 꽃잎들처럼 싱싱할지라도 삶은 고독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절대로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결말은 비극속에서 집시 멜키아데스의 예언처럼 가문의 파멸로 끝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절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삶은 되풀이 되는 것, 순환하는 가운데 조부의 삶이 손자의 삶에 뿌리내리기도 하고 증조할머니의 고독이 증손녀의 삶속에도 투영된다. 가문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이고 개인의 삶은 자신의 삶이자 가문의 삶이고 마을의 역사가 된다.
중남미 민중들의 삶속에서 비극적 한계로 지적되는 근친상간의 이야기들(이 책의 중심테마이기도 하다)은 책을 읽는내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신화와 예언속에 결국은 그로 인해 몰락해버리는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는 민중의 한과 삶을 노래하는 중남미식의 서사이리라. 과장된 언어와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미녀 리메디오스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거나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는 사람들)이 난무하는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의 시작이자 완성이라고 하는 이 책은 존재가 고독임을 알게 하는 서글픈 민중 삶의 연대기이다.
곤파스가 지나가고 난 들녘과 산하는 스산하기 그지없다. 논의 누런 벼이삭들은 바닥까지 그 줄기를 누이었고 과실을 매달고 있던 나무들은 채 익지 않은 열매들과 함께 진창속에서 생을 마갑하고 있다. 그 시간에도 문명은 알록달록한 빛으로 제 갈길을 가고 또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어디서나 고통은 고통받는 자들의 몫인 것인가. 그러나 희망 또한 희망하는 자의 것이기도 하리라. 음산하고 우울한 하늘 아래서도 고독한 자들의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