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저녁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무심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몇십년만에 찾은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딸이 '내가 회장님의 딸이라니!'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아버지를 찾게 된다면 아버지라는 주체를 더 강조했을 것 같은데, 왠지 '회장님의 딸'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더 부각시키고 있는 듯한 대사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대사에도 신경이 쓰여서 그랬던 것일까?
이 책 "설득의 언어학"은 말 한마디에 따라, 말하는 순서나 사용하는 단어, 접속사를 넣어 말하는 것 등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생각과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동안 말장난 같은 넌센스를 내면서 말 속에 숨겨져 있는 보편적인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유행이었었는데, 사실 그 내용을 알면서도 또 무심코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고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무의식을 파고드는 언어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모세는 방주에 동물을 몇마리씩 태웠을까?"라는 물음에 한쌍, 두마리를 떠올리며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방주에 동물을 태운 것은 모세가 아니라 노아다,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나는 무의식에 점령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설문조사 역시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설문 속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의도를 느끼게 되는 순간 설문은 설문이 아니라 주입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 한마디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뀔 수 있는 부분은 법과 정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죄에 대한 증거가 없지만, 말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규정해버릴 수 있다거나, 조롱이 섞여있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으며 그런 뜻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을리가 없는데 긍정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크면, 몰랐다 죄송하다 라는 말로 슬그머니 무마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많은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무의식적으로 같은 데이터 값의 결과를 표현이 다른 것만으로 다른 결과값이라 생각하며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
대화를 할 때, 논쟁이라고 하지만 사실 논리적이지도 않고 대화의 핵심을 벗어나 말꼬리만 잡고 정확한 표현이 무엇이었느냐를 따지는 사람이 있다. 의견을 말하라고 해 내 의견을 명확히 밝혔는데도 자꾸만 의제를 다시 던지면서 찬반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그저 대화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상대방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혹은 자신의 무논리를 감추기 위해 자꾸 핵심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쓸데없는 논쟁에 소모되는 시간이 아까워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우리가 언급해야 할 핵심적인 주제가 뚜렷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책을 읽고 뭔가 정리를 해야하지만 무심코 넘겨버린 내용들이었어서 그런지, 설득의 언어학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런것인지 어쩌면 나도 그냥 저자의 글에 무의식적으로 설득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번쯤은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말과 생각 표현에 대해, 타인의 말과 표현에 대해, '무의식을 파고드는 언어의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