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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 모성 (오리지널 커버 에디션)
  • 미나토 가나에
  • 16,020원 (10%890)
  • 2026-02-10
  • : 8,280

세상의 여성은 모두 엄마이거나 딸이거나,라는 당연한 말을 곱씹어보고 있다. 엄마가 되어보기 전에는 엄마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는데, 굳이 그 입장이 되어야만 보편적인 '모성'이라는 감성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보편 감성으로 모성의 이야기를 읽고 판단해보리라 생각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혈육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타적인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일반화시킬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여고생의 자살로 인한 죽음의 시도가 혹시 타살은 아닌지 - 그 죽음에 여고생의 엄마가 개입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문에서 시작하고 있다. 엄마와 딸이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교차 시점이 같은 일상을 두고 어떻게 달리 느껴지게 되는지, 서로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엄마의 엄마, 딸의 할머니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네 엄마들이 자식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들'이라거나 '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고, 자식의 존재가 그 존재로서 인정을 받는 이름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자식으로서의 의미로만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씁쓸하다던가... 자식을 자신의 소유로 정의 내리는 듯한 관점이 불편하다는,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의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은 조금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성'을 떠올리기보다는 오히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더 생각해보게 된다. 

모성을 읽으며 뭔가 계속 마음이 찜찜했던 것은 가족같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적인 것 같아서는 아닌가 싶다. 그에 더해 학생운동을 했던 아버지의 이념을 그저 집안에서 받았던 할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반항으로만 이해하는 딸의 시선에 반발이 생기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부정할수만은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음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품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야미스 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미나토 가나에도 문 안쪽에서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고 하지않는가.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가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마음도 바뀌어 간다. 그럼에도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가 딸이며, 자신이 갈구했던 것을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모성 아닐까. ....... 문 안쪽에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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