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다 피다피다 꽃이다꽃이 보이지 않는다
피가 보이지 않는다꽃은 어디에 있는가피는 어디에 있는가꽃속에 피가 잠자는가핏속에 꽃이 잠자는가꽃이다 영혼이다피다 육신이다영혼이 보이지 않는다육신이 보이지 않는다꽃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피의 육신은 어디에 있는가꽃속에 영혼이 깃드는가핏속에 육신이 흐르는가영혼이 꽃을 키우는가육신의 피를 흘리는가꽃이여 영혼이여피여 육신이여그대는 타오르는 불길에영혼을 던져 보았는가그대는 바다의 심연에육신을 던져 보았는가죽음의 불길 속에서영혼은 어떻게 꽃을 태우는가파도의 심연에서육신은 어떻게 피를 흘리는가꽃이다 피다육신이다 영혼이다그대는 영혼의 왕국에서육신을 어떻게 다루었는가그대는 피의 꽃밭에서영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파도의 침눅 불의 노래영혼과 육신은 어떻게 만나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던가숯덩이처럼 검게 타 버리고잿더미와 함께 사라지던가그대는새벽을 출발하여폐허를 가로질러황혼을 만나 보았는가황혼의 언덕에서 그대는무엇을 보았는가난파선(難破船)의 침몰을 보았는가승천(昇天)하는 불기둥을 보았는가침몰(沈沒)과 불기둥은 무엇을 닮고 있던가꽃을 닮고 있던가피를 닮고 있던가죽음을 닮고 있던가그대는황혼의 언덕을 내려오다폐허를 가로질러 또 하나의새벽을 기다려 보았는가 그때동천(東天)에서 태양이 타오르자서천(西天)으로 사라지는 달을 보았는가죽어 버린 별죽으러 가는 별죽음을 기다리는 별그대는 달과 별의 부활을 위해개벽의 언덕에서 기도를 드려 보았는가그대는 겨울을겨울답게 살아 보았는가그대는 봄다운봄을 맞이하여 보았는가겨울은 어떻게 피를 흘리고동토(凍土)를 녹이던가봄은 어떻게 폐허(廢墟)에서꽃을 키우던가 겨울과봄의 중턱에서보리는 무엇을 위해 이마를 맞대고눈 속에서 속삭이던가보리는 왜 밟아줘야 더팔팔하게 솟아나던가잡초는 어떻게 뿌리를 박고박토에서 군거(群居) 하던가찔레꽃은 어떻게 바위를 뚫고가시처럼 번식하던가곰팡이는 왜 암실(暗室)에서 생명을 키우며누룩처럼 몰래몰래 번성하던가죽순은 땅속에서 무엇을 준비하던가뱀과 함께 하늘을 찌르려고죽창을 깎고 있던가아는가 그대는봄을 잉태한 겨울밤의진통이 얼마나 끈질긴가를그대는 아는가육신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영혼이 어떻게 꽃을 키우고육신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는가를꽃이여 피여피여 꽃이여꽃 속에 피가 흐른다핏속에 꽃이 보인다꽃 속에 육신이 보인다핏속에 영혼이 흐른다꽃이다 피다피다 꽃이다그것이다!잿더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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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겨울을 겨울답게
살아보았는가
그대는 봄다운
봄을 맞이하여 보았는가...
이런저런 알림이 많아지고 있어서 무던해지고 있지만, 십일년 전의 어느 날은 출근전에 이런 시도 읽곤 했었구나...라는 걸 새삼 놀라며 인지하고 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는 커녕 단편소설집을 일주일이 넘도록 들고만 다니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괴롭다.
책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들로.
허나,
오늘만큼은 잘 지낼것이다.
내게는 좋은 날이니.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