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육중한 어둠이 두 눈에 덮쳐드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너무도 파랗고 너무도 크고 너무도 맑은 눈이 죄라도 되는 듯. 어둠은 밤이 될 때나 극장 조명이 사르라들 때 보통 그러듯 밖에서부터 오지 않고 아이의 몸 자체, 내부에서부터 시야를 앗아갔다. 깜깜한 보자기가 드리워지자 아이는 초등학생용 공책에 그려진 다각형들로부터, 갈색목제 테이블로부터, 좀더 멀직이 놓인 구이용 고기로부터, 흰 앞치마를 두른 엄마로부터, 타일 깐 부엌으로부터, 옆방에 앉아 있던 아빠로부터, 몽트뢰유의 집으로부터, 거리를 내려다보는 잿빛 가을 하늘로부터, 세계 전체로부터 단절되었다. 마법에 걸린 듯, 아이는 암흑 속에 빠졌다." 12
전적으로 할아버지를 믿는 모나, 다른 어떤 어른에게도 보이지 않는 신뢰를 내어주는 모나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간적인 것이 보존되어 있는 곳에 그와 함께 가야 했다. 그와 함께 미술관에 가야 했다. 만에 하나 불행히 모나의 눈이 영영 머는 날이 온다 해도, 최소한 뇌리 깊은 곳에 자리한 저수지에서 갖가지 시각적 광채를 길어낼 수 있으리라. 할아버지는 계획을 세웠다......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그는 모나의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가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만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진미가 손녀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도록 말없이 오래 바라보리라. 그런 뒤에는 시각적 희열의 단계를 지나 예술가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삶에 대해 말해주는지, 예술가들이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풀어내리라.
앙리는 제 귀여운 손녀 모나에게 의학보다 더 도움이 될 많안 일을 떠올린 것이다. 먼저 루브르궁, 그다음에 오르세 미술관, 마지막으로는 보부르에 갈 것이다. 그래, 그곳들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대범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존하는 곳에서 모나를 위한 영양제를 찾아낼 것이다. 앙리는 세상에서 초탈한 애호가 부류와는 달랐다. 그들은 라파엘로가 그린 살의 광택이나 드가의 목탄화가 만들어내는 선의 리듬을 그 자체만으로 흡족해하겠지만, 앙리가 좋아하는 것은 작품들이 지닌 불꽃 같은 성지이었다. "예술은 불꽃놀이 기술, 아니면 헛바람이야" 그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건 하나의 디테일을 통해서건, 한 폭의 그림, 한점의 조각, 한 장의 사진이 존재의 감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31
더 추상적으로, 인간의 자연 본성에 대해서도 말하지. 인간의 본성이라는 건 사실 우리의 근본적인 상태를 말하는 거야. 우리는 어둠의 영역과 빛의 영역, 단점과 장점,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지니고 있지 않니. 그런데 보렴, 이 예술가는 바로 그 인간 본성을 향상시키려고 해.

소녀에게 선물을 전하는 비너스와 삼미신, 산드로 보티첼리, 루브르
왼쪽 행렬의 저 네 여자는 비너스와 미의 세 여신이야. 베풀길ㄹ 좋아하는 신들이지. 그래서 여신들은 어느 젊은 여자에게 선물을 주고 있어. 뭔지는 몰라, 그림에서 볓 부분이 빠져 있으니까. 미의 세 여신은 알레고리라는 것이란다, 모나야. 실제 삶에는 존재하지 않고 네가 그들과 마주칠 일도 절대 없어. 다만 중요한 가치를 상징하는 거지. 이 여신들은 우리를 사회성 있는 존재, 환대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즉 인간을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세 단계를 상징한다고들 해. 이 프레스코화는 그 세 단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지. 세 단계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박아두려는 거야.
첫번째 단계는 주는 법을 아는 것, 세번째는 돌려주는 법을 아는 것이지. 그리고 둘 사이에는 두번째가 있는데, 이 단계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나. 아치 중앙에 박혀있는 요석 같은 거야.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성 전체를 떠받치는 요석이지.
여자는 선물을 받아. 그리고 그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거야. 받을 줄 알기. 이 프레스코화가 말하는 것은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야. 받을 줄 알기. 이 프레스코화가 말하는 것은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야.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선 인간 본성이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지. 타인의 호의를, 기쁨을 주고자 하는 타인의 욕망을 맞아들이기, 자기가 아직 갖고 있지 않는 것, 자기가 아직 될 수 없는 것을 맞아들이기. 받은 걸 돌려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거야. 하지만 돌려주려면, 즉 다시 주려면 반드시 먼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저렇게 유연하고 우아한 데생이며 막힌 곳이라곤, 주저함이라곤 전혀 없이 저렇게 줄곧 이어지는 선이며, 저 부인들이 저리도 아름다운 건 모두 그 연속의 중요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야. 인간들을 서로 연결하고 인간 본성을 향상시키는 끈. 주고, 받고, 돌려주고, 주고 받고, 돌려주고, 주고, 받고, 돌려주고....
삶은 쓰라림을 받아들일 때만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쓰라림이 일단 시간의 체에 걸러지고 나면 귀하고 비옥한 재료를, 아름답고 유용한 물질을 드러내 진짜 삶이 되게 해준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