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웨터를 천천히 위로 잡아당겼다. 같이 말려 올라간내의를 정리해 주었다. 엄마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마치 전속력 달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당시 엄마에게는 옷을 벗는일조차 숨이 가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처음 스웨터조차벗지 못하는 엄마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망가고싶어‘였다. 그러나 다음 날 엄마가 그것을 벗을 노력을 했다는 걸 알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지켜주고 싶다‘로,
"그거 알아? 엄마 지금 진짜 엉망이야........
내가 스웨터를 개키며 말했다.
"그런데 괜찮아 괜찮아, 정말."
나는 재촉하지 않아. 엄마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아니까. 어쨌든 이 스웨터를 벗으려고 시도했던 거잖아. 그작은 의지를 봤으니 됐어. 아주 손쓸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줬으니 그걸로 충분해. 나는 속엣말을 했다.
다음 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다. 여전히 물건을모았고 나에게 학교생활이나 수험생으로서 힘든 일은 없는지 다정하게 물었다. 그러다가도 엄마는 불시에 그날처럼 고장나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멈춘 인형의 태엽을 감듯 엄마에게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엄마의 상한 마음을치료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에게 마음을 써주는사람, 엄마를 가여워하며 쓰레기 집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엄마와 나를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게되었다. 엄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었고 엄마와 나를 거의 동일 인물 수준으로 느끼게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기억을 추적하다보면 한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고흥에 처음 내려와 내가 엄마의 머리를 묶어주던 장면이 ......-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