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곧 정의가 될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무시한 사적인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 역시 정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더욱더 그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정의로움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일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최근 성폭력 범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2차 피해를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는데 그 경계선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선택은 옳다고 할 수 있을지... 답을 내릴수가 없다.
이 소설은 성폭행을 당할뻔한 카나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두른 아령에 가해남성이 죽어버린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 카나의 아버지 료이치는 경찰로서 딸의 행위가 정당방위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살인자라는 오명은 벗을 수 없으며 딸의 미래는 그로 인해 망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 지역에서는 범죄조직원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카나를 폭행하려고 한 남자 역시 블랙체리라는 조직의 일원이기에 료이치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위장한다.
죽어 마땅한 자의 죽음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동안 죄를 저질렀고 미래에도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리라 예상되는 자의 죽음앞에서, 신고를 하고 정당방위로 감형을 받는 것이 옳은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망가져버릴 딸과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가혹한 운명앞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딜레마 앞에서 생각의 여유를 부릴 틈이 없는 료이치는 사건을 은폐시켜버리는데...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게 되는지 그 흐름을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 헷갈려버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그 결말에 이르러서는 더 참담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가 더 현실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있어서 더 비통한 마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는 이런 이 이야기의 끝이 이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삶의 딜레마에 빠져 괴로울 때 인간이기에 잘못된 길을 선택할수도 있음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 소설 속 이야기에서 료이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더 많은 거짓을 만들어내야하고, 그 거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래서 어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럴수밖에 없는 또 다른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