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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살고 싶어서였다.

펭마 해변에는 펭귄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있었다. 얼음덩어리와 뒤섞인 검은 자갈, 반들반들한 검은 등과 멋진 붉은 부리. 바위에 올라 파도의 세기를 가늠하며 어느 타이밍에 뛰어들지 고민하는 성체들도 보였다. 어려울 것이다, 바다로 뛰어드는 일은.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두렵고 주저되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되고 만다. 이윽고 한 마리가용기를 냈고 그 뒤에 서 있던 녀석들도 툭툭 뛰어내렸다.
펭마는 지난번과 다르게 한적했다. 내가 젓갈 냄새라고 미화했던 펭귄 분변 냄새도 훨씬 덜했다. 조약돌을소중히 모아 만든 젠투펭귄들의 집은 비어 있었다. 밀려난게 아니라 스스로 떠난 길이었다. 더 큰 세상으로. 좀더 걸어가니 절벽 쪽에 한 무리의 젠투펭귄들이 모여 있었다.- P280
동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대로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데 한 발 한 발 내게 다가왔다. 곧 있으면 3월이건만 아직 솜털을 달고 있는 아기 펭귄들이었다. 너희늦둥이구나, 싶으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아기 펭귄들은 내가 들고 있는 등산 스틱을 톡톡 쏘았다. 뾰족한 부분이 내 부리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걔들은 나름 다정한 인사를 한 거라고. 나는 잘 있으라고, 겨울을 잘 견디라고 말하며 아쉽게 돌아섰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살고 싶어서였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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