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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옛것보다 나쁜 새로운 것들로
  •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 11,520원 (10%640)
  • 2009-03-27
  • : 23,587

          우리는 가끔씩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인도의 귀퉁이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라나는 초록 새싹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은 '신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데도, 새싹이 자랄 수 있구나!' 그 새싹이 잡초일지라도, 잡초의 질긴 생명력에 질려버리는 감정이 아닌, '신기'하다는 감정이 언제나 우선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화자에게서 난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그 녀석, 정말 '신기'하네.'


"빵 한 입에 우유 한 모금 물고서,
건조하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오늘분의 감정을 꼭꼭 씹어,
마음속 깊숙이 담아둔 밀폐 용기에 가두기 위해."
-p. 13.
 
 

           2008년에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아마도 2009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게 된 것은 올해(2012년) 초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2009년에 읽었을 책을 나는 겨우 2012년이 돼서야 읽은 것이다. 세익스피어 작품이 오늘날에도 꾸준히 읽히는 것처럼 책 읽는 것에 어떤 시기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왠지 유행에 뒤진 느낌, 혹은 뒷북치는 느낌이 드는 건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뒷북 좀 처보자.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기괴하고 암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머니에게서의 버려짐, 새 엄마의 냉대, 말 더듬, 아동 성폭력, 교사의 무관심, 맞지 않는 퍼즐을 끼워 맞춘 듯한 조각난 가정...... 거기에 덧붙여진 마법 이야기. 기괴하고 암울한 내용일지라도 주인공이 강인하여 이 그 역경을 뚫고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뻔한 '청소년문학'스러운 전개가 기대(?)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무능하고 무관심하고 소극적이며, 외부인으로 남길 원한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마지막에는 어떤 암울한 삶의 극복을 보여주고 있으나(당연히 청소년문학이니, 이 정도의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야할 나이니까), 그 극복은 긍정적 평가로 '현실적'이라 말할 수 있지만, 부정적 평가로는 '낮은' 극복으로 보인다(무능하고 무관심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큰 극복일 수도 있겠으나, '희망을 심어줘야한다'는 의무감에 비춰봤을 때). 그래서 이 소설이 어쩌면 높이 평가 받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문학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결코 청소년문학 같아 보이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이 소설을 '선택'을 다룬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절대로 틀릴 수 없는 말이다(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데, '틀림'이라는 단어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아주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큰 물줄기 심연에는  교육, 가족, 아동성폭력 등 현 시대의 문제를 담아놓았다.

 

 

"그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틀릴 확률이 어쩌면 더 많은,
때로는 어이없는 주사위 놀음에 지배받기도 하는.
그래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p. 251. '작가의 말'

 

 

          이 '선택'이라는 주제는 마지막에 'Y의 경우'와 'N의 경우'를 형식에 도입함으로써 하나의 완전체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의 빵'에 따라 붙는 단서. 자신이 바람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데는 그 만큼의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라는 삶의 공정성. 이것이 이 소설의 방점이 되고 있다. 흡사 과거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과거로 가서 자신이 후회하던 일을 수정했을 때, 현재가 조금씩 더 부정적으로 뒤틀려지는 내용의 영화 <나비효과>처럼(<나비효과>의 감독판은 주인공이 결국 어머니의 배 속 태아 때의 과거로까지 가서 자신이 죽는 방법을 선택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도 같은 맥락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가 흥미로운 것은 선택의 결과에 따른 두 가지 결말을 모두 보여준다는데 있다. 그것이 'Y의 경우'와 'N의 경우'인데, 독특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영화에서 가끔씩 봐왔던 결말이므로), 참신한 결말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문학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긍정적인 결말 형식이라고 평가될 만 하다. 청소년들은 위 세대보다 더욱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고, 선택이 위 세대보다 더욱 크게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선택에 따른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좋은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청소년문학의 한계겠지만, 죽음이나 실패와 같은 비관적 결말이나 삶의 무의미성을 주제로 할 수 없으며, 어떤 교훈을(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또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던져줘야할 의무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위저드 베이커리>가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교훈, 혹은 격려, 희망의 작은 싹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보도블록의 초록 싹'을 연상시킨다. 구병모 작가의 관조적 자세나 시각으로 봤을 때, 만약 그녀가 성인 문학을 했다면, 보도블록 사이로 싹이 나오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밟게 만들어 싹을 틔울 시간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청소년문학이라서 '싹'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구병모 작가는 현재(2012년)까지 4편의 장편소설과 1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총 5권의 단행본을 내놓았다. 사실 <고의는 아니지만>이라는 단편모음집의 제목에 꽂혀(제목이 강력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구병모 작가를 탐색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처음 읽게 된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였다. 비록 청소년 문학이지만 나는 이 작품을 대단히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으며, 그녀의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발화점이 되었다. 그녀는 조만간 청소년문학을 넘어설 것이다. 아니 벌써 넘어서 있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은 이미 청소년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가 좋고 그녀의 작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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