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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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사마귀 제거 시술을 받았다. 콩알만 한 크기지만 그 위치가 하필이면 발바닥이라 일상을 보내는데 크게 애를 먹고 있는데, 가족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 크게 의지가 되고 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이런 일을 겪으니 자연스럽게 상처에 관한 한 가지 일화가 떠올랐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질문받은 적 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우리가 초창기 문명에 대해 떠올릴 때 흔히 연상하는 토기, 낚싯바늘, 석기 등을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그녀가 대답한 답은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였다. 미드는 이와 같이 덧붙였다. “만약 당신이 동물인데 다리가 부러졌다면 죽겠죠. 달아날 수도, 물을 마시러 강에 갈 수도, 사냥할 수도 없으니까요. 당신은 그냥 다른 짐승들을 위한 고기죠.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음을 나타내요.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문명의 시작이에요.”
한 광고가 있었다. 한 쌍의 소년과 소녀가 매트리스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잠드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광고였다. 그 일로 아이들은 굉장히 유명해졌고 둘의 부모님들은 각각 돈을 거머쥐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연예인이, 정확히는 화려한 스타를 꿈꾸는 사람이었고 본인의 능력으로는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딸을 통해 성공을 꿈꾸었다. 소년에게는 항상 일 벌이기를 좋아하지만 대부분 크게 말아먹는 아버지와 따스한 어머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여러 가지 사업에 대하여 자주 싸웠다. 소년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집에서 키우던 천산갑들과 엄마, 둘만 있다면 그는 언제까지나 다루기 쉬운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싸우고 뜨겁게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괜찮아 보였던 소년의 어머니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떠났다. 그 뒤로 소년은 자라 남자가 되었다. 남자는 연예인은 아니더라도 세트장을 짓고 수리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생활했다. 그 과정에서 남자를 발굴했던 광고의 촬영 감독에게 제안받고 영화를 한 편 찍었다. 남자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울었고 마지막에는 우는 남자의 얼굴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며 영화가 끝났다. 그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다. 한 편, 소녀는 어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연예계에 발을 담갔다. 그렇지만 어딘가 특출나게 도드라지는 특징이 없었기에 학업에 성실한 모습이라도 보여서 대중에게 친근한 스타가 되어야 했다. 소녀는 미디어에 노출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물건으로서 여자가 되어야 했다. 그 방식은 강제였고 폭력이었고 협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과정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제법 자랄 때까지 살아남았다. 남자는 죽음에 연인을 빼앗기고 선을 넘은 결과, 좁고 불편한 단칸방에 갇히듯 살아가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 역시 버티고 있었다. 이 책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을 소개하는 문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어린 시절에 함께 출연했던 영화의 회고전이 프랑스 낭트의 영화제에서 열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중년이 된 두 사람은 파리에서 재회한다.’ 계기라고? 그건 장하이타오가 그랬듯, 그들의 노력과 그리움을, 그들의 우정과 유대를 외부에서 성별로만 피상적으로 바라본 뒤 얄팍한 단어 하나로 그 기나긴 역사를 압축해 버린 것과 다름없다. 그건 구실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소녀와 울음을 멈추지 못한 소년은 항상 서로를 그리워했고 찾아다녔다. 둘의 삶은 항상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쪽이었다. 심지어 사랑조차 그들에게 안식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그들에게 행복보다 더 큰 죽음과 이별을 가져오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이라도 그 아픔에 공감해 줄 사람, 함께 울어줄 사람. 그 한 사람과의 이별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물지 않은 아픔을 간직한 채 서로를 기다렸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P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