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계의 기표들은 기본적으로 알튀세르에 의해서 일신교 담론에서, 특히 모세에 의한 그것의 재창설(“저는 당신을 섬기는 자 모세입니다.”)과 그 복음주의적인 변형 반복(“너는 베드로이니라.”)에서 차용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알튀세르가 아주 난폭하게도 상상계 영역 및 상상계를 특징짓는 거울 관계 영역으로 라캉의 상징계를 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상상계의 내적 “기능”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알튀세르가 그와 동시에 암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물음은, 널리 알려진 라캉적 체계화에서 무의식 과정들을 해명하는 세 번째 기둥을 이루는 “실재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한 가지 점을 가리키고 있다. 즉 알튀세르는 라캉처럼 “실재계”를 어떤 불가능, 또는 상징화할 수 없기에 재현 불가능한 어떤 외상성의 사건, 요컨대 초월론적 “물 자체”와 같은 부정적 기능으로 동일화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상상계의 물질성과 상관적인 이 실재계의 실정성은 무엇으로 성립하는가? 여전히 매우 불가사의하다 할지라도 텍스트의 지평에서 보자면, 이 물음이 “나쁜 주체”, 즉 “홀로서기”에 성공하지 못한 주체, 또는 호명을 거역하는 주체라는 물음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은 시사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때 말할 수 있는 것은 주체가 지닌 허약함 자체에서 기인하는 주체의 권력 초과분이 바로 호명의 고리에서 관건이라는 점이다. 물론 호명은 주체를 구성하고 주체에 “형상”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자주 주의했던 것)은 알튀세르에게서 이상한 유보조건 같은 그것, 즉 우리가 또한 저항이나 부인의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