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그랬던가? 괴물과 싸우는 동안 괴물을 닮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건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일일지라도 그 환경에 계속 노출되다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게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 진영 내에서도 획일화와 엄격한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던 사람이 자식에겐 외고에 들어가라고 닦달하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타인에 대한 비판으로만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 나의 모습에서도 그런 아이러니는 있었으니까.
오늘 군대 동기인 상남이와 중앙도서관에서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아무래도 군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그 때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지금은 그저 추억이란 이름으로 한껏 포장되어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던 중 화들짝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었다. 바로 양우주라는 후임을 내가 엄청 때리고 괴롭혔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상남이가 이야기해주는 사실은 더 악랄했다. 이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내가 후임일 때 여러 상황들로 선임들에게 당하면서 그런 것들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난 '군대 폭력'이란 것과 싸우고 있었던 셈인데, 그게 어느 순간 내재화되어 내가 선임이 되자 쏟아져 나온 것이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폭력성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꽤 악랄한 구석이 있었다. 난 꽤 선한 척하며 그렇게 한데 반해 상남이는 노골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혔으니 오히려 인간적이라 할만하다. 내 악랄함의 극치는 08년도에 청학동 겨울 캠프에서 드러났다. 난 30명가량을 이끌어야 하는 훈사라는 역할을 맡았다. 그곳은 군대 규율이 횡횡하는 곳이었다.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연대 책임을 묻기도 하고 아이들의 발바닥을 때려 일벌백계를 하기도 했으니까. 내가 정말 '폭력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었다면, '폭력'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분위기가 아무리 그럴지라도 새로운 방법을 찾았을 거다. 난 기본적으로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한 반감정만 있었을 뿐, 그것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난 그렇게 괴물이 된 것이다.
난 내 스스로 주위 환경 자체의 나쁜 점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 그러한 환경을 철저하게 수호하는, 아니 더 적극 활용하는 '괴물'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래서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선 자기변혁이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리라. 이미 내 안에 알게 모르게 기존 관념들이(명예욕, 권력욕, 자본욕) 자리하고 있는데 그 관념의 허구를 비판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변혁을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 내가 ‘자본주의’에 대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 지 고민했던 건 아니었다. 나야말로 예수가 비판한 ‘바리사인’이었던 것이다. 체제 유지에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오히려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존재였던 거다.
그가 말하는 ‘진보’와 ‘영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더라. 그건 자신이 있는 위치(계급적 위치)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며 사회가 유포한 욕망에 내 몸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영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성’이란 신을 찾으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그런 영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건 내 존재에 대한 물음이고 나 자신의 변화에 대한 물음인 거니까. 그래서 그는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심리적 평온 뿐’이라고 말한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선 결국 외부의 괴물을 물리치려는 ‘혁명’적인 마음과 내부의 괴물을 물리치려는 ‘영성’이 동시에 필요했던 것이다. 나의 상황을 알게 된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