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편안하고 차갑지 않은 목소리
영원에 가까운 목소리
목에 석류알처럼 붉은 테를 두른 예쁜 고둥이 내는 목소리
스무 살 내가 처음 바닷가에 갔을 때 들리던 목소리
아득한 바람개비 같은 목소리
수수깡 부러뜨리는 소리 같은 목소리
길고양이 내게오는 발소리 같은 목소리
모서리 동그랗게 오리는 공작가위질같은 목소리
사랑하고픈 목소리
아름답고도 슬픈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
닮고 싶은 목소리
세월의 바람개비
바람개비 든 손, 앞으로 쭉 뻗고
운동장을 달렸네
동네 골목을 달렸네
배경은 아무래도 좋았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바람개비
파르르르, 파르르르, 잘도 돌았지
야무진 바람개비 내 심장
벅찬 바람으로 파들거리고
웃음이 절로 터졌지!
서녁
이루고, 무너지고, 복구하고
만들고, 먹고, 싸고, 또 만들고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망각하고
다시 만들고, 먹고, 싸고
하루 햇빛이 일제히 돌아가느라
몰려 있는 하늘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영혼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아무 힘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거지
엄마도 죽고 아빠도 죽은
고아들이
고달프고 고독하게
살다가 죽기 일쑤인 거지
없어,
없어,
없어,
죽은 다음에 영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