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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없다
  • 정혜승
  • 17,100원 (10%950)
  • 2023-10-29
  • : 1,106
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형참사로 지난 시절을 불러올 수 있다. 성수대교는 초등학생 때, 삼풍백화점은 중학생 때 각각 무너졌고 대학생 때는 대구에서 지하철 화재가 있었다. 그때가 방학이었는데 고향인 대구에 가 있던 후배가 누나는 왜 내 생사확인 전화도 안 해요? 하고 나중에 한 연락이 대형참사가 나와 닿아있다는 최초의 자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가 된 세월호 침몰이 있다. 엄마가 된 나는 매일 울면서 뉴스를 봤다. 처음으로 정치학이 아닌 현실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평화시민혁명으로 대통령을 바꿀 때는 효능감 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다.

이게 마지막었다면 세월호의 상처는 아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참사는 다시 일어났다. 축제를 즐기던 청년들이 산채로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났다. 밤이 늦도록 뉴스에서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 있었다.

이때 느낀 절망감을 사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1년이 넘도록 유가족도 지인도 아닌 나는 그때 무너진 생활을 다시 복구시키지 못하고 있다. 옅어진 줄 알았던 세월호의 슬픔도 겹쳐진다. 아이 하나 청년으로 키우는 일, 일상을 즐기는 일도 복불복으로 실패하는 게 이 세상이란 생각에 우울하고 허무한 마음이 여전하다.

이전에는 대형참사가 나와 닿아있는 줄 몰랐고, 세월호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그 시간의 축적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정말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1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는 데서 오는 공포를 준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에 필요한 게 이런 책이었다는 것을 읽고나서 깨닫는다. 참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 어쩌다 일어난 재수없는 사건이 아니라 작은 균열로 시작되어 시스템 전체가 붕괴된 결과임을 인터뷰와 취재, 국내외와 과거, 현재를 넘나드는 정치사례, 그리고 참고 도서를 오가며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렇게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나니 좀 차분해진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 참사가 우연이 아니라 잘못된 정치를 넣은 결과값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기자가 사실을 전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어수선한 요즘이다. 쉽게 욕하고 마는 해로운 기자와 그의 글과는 달리 이런 책은 참사의 씻김굿이고 이를 쓴 기자는 이 사회의 만신이다. 기자와 그의 작업이 봉합과 회복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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