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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를 돌보다
  • 린 틸먼
  • 15,120원 (10%840)
  • 2023-10-13
  • : 5,815



나이 듦의 슬픔은 그것이 오롯이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점에서 청춘의 슬픔과 다르다. 나이 듦의 슬픔은 자신과 주변인의 슬픔이며, 나이 듦이 망각에 접어들면 그 슬픔의 지분을 주변인이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주변인은 그것을 어떻게든 다루어야 하고.


‘어머니 돌보기’와 아이 돌보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이 책의 원제는 mothercare인데 작가는 childcare를 염두에 두고 이 단어를 만들었다 한다) 이 돌봄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도 재활도 죽기까지의 편안함을 지향하며, 이미 나빠진/노쇠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고가 아닌 지금보다 나은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이런 사실은 우울하다.


그럼에도 자매들과 돌봄노동자와 의료인과 협력하며, 때로는 그들과 반목하며 저자는 이 돌봄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양가감정적 애정 때문일까? 미국에는 단어화 되지 않은 개념인 효(孝)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사실 저자도 이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삶 자체로 보였다. 인간의 일생을 생로병사로 흔히 표현하는데 이것은 순차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삶 순간순간에 생로병사가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 듦도 질병도 죽음도 타인의 몸으로 내 삶에 들어올 수 있고, 그때 나는 그 삶을 또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아서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슬픔과 돌봄 노동은 절대로 가볍지 않음이 분명하다. 들리는 이야기로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경험을 책으로 쓰기까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매일 쓴 일기처럼 생생한 것은 여전히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진행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끝이지만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질문이며 상상이고 결코 회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동행임을 그가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죽음은 존재하는 것이 된다. 유골을 보관하고 타일을 제작하고 책을 쓰고 하지 못한 질문을 생각하면서.


특별한 점은 이 이야기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여성들의 서사라는 것이다. 어머니를 돌보는 세 자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여성 돌봄 노동자가 등장한다(물론 의사들도 있지만 그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매우 중요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존재는 아니다. 다른 이들이 배우라면 의사는 무대 위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감이 큰 소품 같은 역할이다.). 전통적으로 돌봄이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이긴 하지만 이 가정에는 달리 돌봄을 맡을 남성 구성원이 없고, 여성 환자는 대개 여성 간병인을 고용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여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여성이 실패하고, 여성이 이겨내며, 여성끼리 대립하고, 여성이 돌보고, 여성이 죽는다. 그 덕분에 나는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 가운데 편안함을 느꼈다. 성별에 따른 억지 논란, 피곤한 고정관념을 제하고 그저 인간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소설로는 이주혜의 <자두>가 있다. 여기에도 간병과 돌봄이 있지만 그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도 있다. 이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 소설을 더 먼저 읽어서 <어머니를 돌보다>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며칠 전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노후와 노화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적이 있다. 우리는 주변의 불행 사례들을 앞다투어 꺼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것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그 삶 또한 기꺼이 살아낼 것이다. 불행하게, 힘들게, 그러나 꿋꿋이,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이 책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누구나 부모를 잃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이 복잡한 감정을 살게끔 예정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P33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래서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더라도 더 이상 자기 생각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삶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다만 그 삶은 당신의 예전 삶일 수는 없다.- P38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적, 심리적 관계는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법칙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역사가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욕을 꺾고 힘을 뺀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석과 결정 속에 맴돈다. 지형은 험난하고, 이전 전쟁에서 남은 폭탄이 깊은 감정의 밀도에 의해 기폭된다. 가족 또는 친구들은 화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아니면 분열하다 분해될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된다.- P81
짐가방은 어디로 갔을까? 없어졌어. 너희가 어떻게 한 거야? 어머니는 점점 더 흥분했다. 그래서 내가, 짐가장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때로는 울음을 터뜨렸다. 기억 상실을 겪는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나는 짐가방에 어머니의 과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짐가방의 분실은 어머니의 과거의 분실을 상징한다고. 또는 그 짐가방에 어머니가 잃어버린 기억들이 들어 있다고.- P86
임종 과정은 기본적으로 괭이밥의 이파리가 밤에 닫히는 것과도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발가락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움켜쥐듯이.

그 과정은 출산 과정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P184
나는 어머니가 아프긴 해도 정신이 맑았을 때 물었다. 인생은 고달프고 살다 보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어머니는 말했다.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니까.-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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