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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 미키 켄들
  • 16,200원 (10%900)
  • 2021-03-06
  • : 562
여성이 해방되어야 하는 존재에서 투쟁하는 존재를 지나 이제는 각자의 투쟁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제목이다. 처음 페미니즘을 더듬더듬 배울 때 페미니즘의 근원을, 그로부터 파생된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구십구퍼센트 백인 여성의 이름으로 쓰여있었다. 새내기 페미니스트에게 백인/비백인의 나눔은 체감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일단 그조차도 귀한 경전같아서 남김없이 흡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태초에 말씀이 있게 된다, 백인 여성의 말씀이.
서구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이 아시아 비백인인 나에게 저항없이 흡수된 건 내가 한국에서 주류 피부색인 배경도 유효할 것이다. 이십대라는 나이도, 학생이라는 지위도, 편안한 거주지도 딱히 나를 주변인으로 정체화해 나만의 페미니즘을 고민할 지점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나의 투쟁’(히틀러 아님 주의)을 시작한 것은 ‘주류 페미니즘’으로부터 이성애 결혼(가부장제의 부역자), 임신과 출산(사회적 무능), 양육(무지한 아줌마)에 대한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비혼도 딩크도 학자도 워킹맘도 아닌 나는 그렇게 주변인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미국 국적의 흑인도 아니고 인종문제에 해박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문장 아래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이 나의 페미니즘을 전부 설명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후드의 소녀가 베스트셀러 페미니스트 작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힐빌리의 노래』가 생각이 났다. 힐빌리의 노래는 백인 남성의 이야기이므로 성공 서사를 제외하면 완전히 반대지점에 있어 비교하기 적합하다. 가장 큰 차이는 힐빌리는 (미국인)백인 남성이라는 이점을 업은 성공이었고 미키 켄들은 흑인 여성임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켄들의 후드는 과거가 아니고 그녀의 삶에서 끝난 챕터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후드 정체성으로 살고 있고 거기서 오는 페미니즘을 한다. 그 현장성은 너무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주제를 건드린다. 식량, 주거, 기본적인 교육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뜬구름 잡는 이념이나 사상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다.(여담인데 두 저자 모두 할머니의 양육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는 점이 특이. 노년 여성이 이렇게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책의 거의 모든 문장에 ‘미국의’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유색인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나는 비백인이라는 말을 선호함. 본문 내 비백인은 1번 나오고 유색인종이 기본값) 나 역시 유색인종이지만 미국이라는 배경 바깥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정의가 대부분이고 그렇다고 나를 백인으로 생각할 수는 더더욱 없어서 나라는 아시안 여성은 사실상 텍스트에서 지워지게 된다. 미국의 유색인종이라고 마음으로 덧붙여 읽는다 해도 어쨌든 느껴지는 부분. 이럴 때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아시아는 제3세계인 거 참 와닿는다.

*책의 제본상태 문제
책 읽을 때 꾹꾹 눌러 180도로 펴는 거 싫어하고 100도 이하 각도로 펴서 양 손으로 잡는 편인데 이 책 중반부 즈음 왔을 때 책등 세로로 갈라짐. 분리된 건 아니고 책등에 세로줄 굵게 2개, 잔주름 많이 생김. 괴로움.
*’그녀’의 문제
도대체 왜 요새 그녀라고 쓰는 거 기피하는지 모를 일. 여자를 여자라고 부르지도 못해요? 그러면서 여동생, 소녀 이런 말은 잘만 씀.
*노오력
책 중에 ‘노오력’으로 번역된 부분이 있던데 번역서에 당대 유행어 등장하는 거 별로라고 생각함. 언젠가 낡아버릴 말 대신 고전으로 읽혀도 괜찮을 단어를 골랐으면. 말하자면 우리집 초등학생 어린이가 대학에 갔을 때 내가 이 책을 물려줘도 노오력에 대한 부연설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
가부장제의 ‘착한소녀‘라는 주물 틀에 들어맞는 소녀, 성가신 스스로의 흥미도 드러내지 않고 목표와 관심사도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기꺼이 지도를 받을 의사를 보이는 소녀는 교사, 고용주, 또한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힘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자원을 얻게 된다. 반대로 더럽고, 시끄럽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되고자신의 출신을 밝히는 소녀는, ‘착한 소녀와 유리되면 될수록 같은 자원의 수혜를 입지 못한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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