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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ks99님의 서재
  • 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
  •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 11,700원 (10%650)
  • 2009-02-12
  • : 52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 <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

주인공 피렐리는 못생겨서 세상을 비관한다. 그 못생겼다는 생각은 상당히 상대적이다. 형들이 너무 잘 생긴 연예인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살하려는 순간, 자칭 위대한 예술가 제우스를 만나게 된다. 피렐리는 자살을 24시간만 미뤄달라는 제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어차피 버릴 목숨이었으므로. 제우스는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 이제 피렐리는 한 인간이 아닌, 제우스의 작품이다.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예술품이다.

황당한 얘기지만, 그냥 현실감을 접고 읽으면 그 나름 그럴듯하게 풀려나간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생각을 했을까? 캠벨 깡통을 쌓아놓고 찍은 사진을 작품이라고 하는 앤디워홀이나, 변기를 전시장에 놓고 샘이라고 이름붙인 마르셀 뒤샹 못지 않게 기발하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나가면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진정 창의적인 작가가 아닌가.

<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라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말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을 볼 때 ‘인간명품’이란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나는 늘 자살에 실패했다.” 라는 첫문장도 자극적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펼치던 순간, 좀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있던 때라, 자살하고 싶다는 주인공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왜 자살하려는 건지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사는 데 실패했다는 건 그렇다 치자... 자살까지 실패하다니! 정말이지 내 자신이 부끄럽다. 삶 속으로 뛰어들지도 못했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도 못하다니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다. 내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니까.”

‘자살까지 실패하다니!’ 라는 말은 잘못된 거 아닐까?

피렐리는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때껏 나는 내 자신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태어나 유전법칙에 따라 상장해왔을 뿐. 그랬다. 나는 그때껏 나라는 존재를 그냥 견뎌왔다.”

여기까지 읽으며 나는 점점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며 책 속으로 빠져들다가 주인공의 나이를 알고나서 더 큰 절망에 빠졌다. 이런 고백을 할 때 피렐리는 스무살이었기 때문이다. 민망... 그보다 세배를 더 산 내가 이제야 스무살 짜리의 독백에 감탄하고 있다니...

“젊은 시절, 나는 아름다움이 오직 내게 깃들기만을 원했다. 그래서 불행했다. 지금 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내 주변 곳곳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312쪽)”

피렐리는 예술품이 되어서 자유도 인격도 빼앗긴 삶을 살아보고서야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도중에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도 가끔 들었지만 결국 끝문장까지 읽고 말았다. “영원히 지칠 줄 모르는 바다가 우리의 발자국을 하나씩 둘씩 지우고 있다.(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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