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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의 두번째 나무
  • 신 없음의 과학
  • 리처드 도킨스 외
  • 13,320원 (10%740)
  • 2019-11-08
  • : 1,056

개인의 실존에 의미가 없다면 어떨까. 한번뿐인 나의 인생에 딱히 의미랄 게 없다면, 우리는 삶을 견딜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엔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운, 예컨대 일생을 베풀며 살아온 이들의 교통사고랄지, 신실한 부부의 자녀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두고, 우리는 손쉽게 얘기한다. “주님이 이들을 특별히 긍휼이 여기셔 거두사.......”




하지만 만약 이유 같은 게 없다면 어떨까. 이 질문은 문턱에서부터 위태롭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교의 그림자가 너울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17세기 이전으로 퇴행한다. 니체의 선고로부터 한 세기가 더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신의 관한 얘기라면 왜 이토록 경직되는 것일까.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진실을, 언제까지 먼지가 쌓이도록 방치할 것인가.




<신 없음의 과학>은 이러한 질문을 전면에서 마주한다. 정확히는, 앞뿐만 아니라 양 옆과 뒷면을 샅샅이, 주사위 굴리듯 뒤져본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리처드 도킨스’와 ‘샘 해리스’의 프롤로그가 1/4을 차지하고, 본론은 2007년 무신론의 대표주자 네 명의 대화록으로 구성된다. 특이한 건, 이런 유의 책에서 흔히 차용되는 찬/반 구도가 아니라, 같은 결론을 가진 논객들의 대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은 미묘하게 달라서 팽팽한 장력을 조성한다. ‘왜’라는 질문 앞에서 불편함보다는 흥미를 느끼는 논객들답게, 결말이 보이는 토론에서 이들은 끝없이 추궁한다. 특히 ‘샘 해리스’가 그렇다. 이를 테면, 종교인의 부조리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의견에 “하지만 정말 기분이 상하십니까? 그저 옳지 않다고 느끼는 것 아닌가요?”(p84) 라고 되묻는 것이다.





이처럼, <신 없음의 과학>은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이루는 곁가지들 역시 사려 깊게 관찰한다. 이를 테면, 무신론과 유신론이라는 각 진영을 이루는 논리와, 그것을 지켜내려는 심리 역시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이 책이 같은 결론을 두고서도 2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경합을 펼칠 수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던 것이다. 성과 정치와 더불어 사갈시되어 온 종교라는 테마를, 이제 용기내서 마주할 때가 아닐까. 그런 독자에게 <신 없음의 과학>은 짧고 묵직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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