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1
요시다 슈이치, 그의 2002년 아쿠타카와 수상작인 <파크 라이프>가 열림원에서 출간되었고 유일한 장편 소설 <퍼레이드>가 5월 9일 출간되었으며 문학동네에서 조만간 <열목어>가 나온다고 한다. 중앙일보에서 보고 줄거리가 재밌을 것 같아 교보문고에 가서 사서는 커피숍에 앉아서 읽었다. 꽤 재미있어서 열림원에서 나왔었다는 <파크 라이프>도 샀다. 이 표지 또한 예쁘다. 집에 돌아와 읽었다. 그리고 나오키의 버릇대로 책 뒤에서 적었다. 2003.5.17.

<퍼레이드>는 아파트에 어떻게 모여 살게 된 다섯 명이 이야기다.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형식적인 기법으로 부각시킨다. 즉 5명의 시점 ‘퍼레이드’를 통해 당사자는 제삼자가 되고 관찰자는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된 제삼자는 다른 사람의 기술로 드러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장의 주인공인 요스케는 응석을 부리는 것을 잘 못하겠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하는데 두 번째 장의 고토미는 요스케는 “저것도 재능이야, 응석 잘 부리는 것 말이야”라고 말한다.

이 다른 모습은 객관적인 상과 주관적인 상의 괴리만은 아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이 자신을 파악하는 자아상 역시 분열되어 있긴 마찬가지다. 고토미는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봤을 때 잡아끄는 나와 도망치는 나가 나뉘고 나오키는 아파트 저편에서 관찰하는 자신을 다시 본다. 그래서 나오키의 이 말이 가장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네가 아는 사토루는 너밖에 모르잖아” “그러니까 넌 네가 아는 사토루밖에 모른다는 말이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아는 사토루밖에 몰라. 그러니까 요스케나 고토도 그들이 아는 사토루밖에 모르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인물은 주인공일 때 드러나는 혼자만의 비밀을 한 가지씩 안고 있다. 만화 컷 같은 그들의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비밀스럽긴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등장인물들 간에) 면은 그 사람의 어떤 ‘본질’과 맞닿은 부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니까 ‘알고 보니’ 식으로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우정을 나눈 친구(이 말로 짐작되는 것과는 좀 다르다)가 있는 요스케, 강간 장면만을 비디오로 모은 미라이, 남의 집을 몰래 찾아가는 사토루, 그리고 (중앙일보에서 스포일링한 거의 끝장까지 읽어야 드러나는) 나오키의 비밀까지. 하지만 이 꽁꽁 싸놓은 비밀은 절대로 ‘본질’이니 ‘진실’이니 하는 말로 통하는 통로가 아니다.

“진실이란 말, 난 도저히 그 말에서 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나오키) 그러니까 진실 같은 건 없다. 그냥 사실만 있을 뿐이다. 비밀을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과거에 대한 조그마한 이해나 친밀감이 생기리라는 기대 정도?

그렇다고 이 소설이 섬으로 고립된 현대인상을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확대해석될 여지도 없다. 그러니까 이런 비밀로 드러내려는 것이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고립감, 이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간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일껏 생각해서 던지는, “만약 내가 도울 만한 것이 없을까?”(고토미) 이런 말들은 진짜 골치 아픈 일들이 막상 닥치면 쓸모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와야 하는 심각한 순간도 우리는 알아챌 수 없다. 친한 친구는 모르는 곳에서 죽고, 그들의 우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낙천적이다. 사토루 말대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집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말도 걸고 싶지 않았을 타입의 인간들뿐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무리 속에 섞이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있는 게 즐거워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주어졌으니 사는 것이다. 즐거우면 더욱 좋고.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처럼 거북이가 한걸음 한 걸음 열심히 앞으로 나갔기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기어가는 모습을 토끼에게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