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리고 삶
anyone 2002/10/2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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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처음부터 누워 있는 죽음이다. 이 죽음의 성격은 아주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변주된다. 그리고 그 내에 위치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면)는 얼마나 생생한지.
먼저, 바리톤만. 다양한 악기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며 까딱 잘못했으면 '음치 만'이 될 뻔한, 처음과 끝은 있었을 것이나 여기 등장하는 세월에 비한다면 없다고 해도 무관할... 어느 30년 전 부부로 맺어지기 전의 남녀가 찾아와 몸을 비볐고 그리고 오늘 그들이 주인공(죽음)을 맞이한 곳...
세월. 묘사에 따라 길고 당기고가 가장 심해 형편없이 체면이 구겨진다. 그리고 가장 하찮은 존재인 인간. 그들에 끼어든 죽음은 삶보다도 더 생생하다.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 벌레들과 어울리는 평화로운 '삶'이다. 자신들의 추억이 쌓인 곳이 개발된다는 소리를 듣고, 하필이면 날씨가 좋은 아침에, 그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옛 장소를 찾아가고 세상에서 가장 볼썽 사나운 모습으로 죽는다. 남자 동물학자는 옷을 몽땅 벗은 상태, 여자 동물학자는 아랫도리를 벗은 상태다. 이미 남자 동물학자는 한번 피식 싼 상태이며, 갈매기는 이것을 물고기 냄새로 착각하고 쪼아댄다.
두 생물학자는 처음부터 죽어서 나온다. 신의 버림을 받은 듯이 건조한 죽음이다. 생물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는 것으로 축복을 내릴 뿐이다. 죽음을 처음에 묘파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되고, 가슴 찡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단지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성장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가는 것이라는 사실, 정자가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그 순간이 죽음을 향한 돌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죽음과 삶은 같은 비중으로 놓여 있다. 그곳에서 찾아지는 우연과 비극의 묘미는 과학자의 일지 같은 꼼꼼함으로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지이익 '배어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죽음이다. 작가가 '주인공'인 여러 죽음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고 고르고 골랐을테니 그 점은 믿어도 좋다.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더 나았다. 하지만 30분 늦은 남자의 죽음은 소망의 제스처를 만들었다.
우리의 바람-아주 처음에 피력되고 나중에 그 유일한 소망마저 짓뭉개짐을 파악하게 되는-의 흐름을 읽기 위해서, 그리고 앞뒤로 성실하게 짜맞춰진 것을 알기 위해서 꼼꼼히 읽든지, 한번 더 읽을 필요가 있다.
** 오자를 몇 개 발견했다.
97쪽 반드시->반듯이, 모든 '톡토기'에 비해 하나의 털이 부족한 '독토기'(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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