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퇘지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역자의 글에 관해서
anyone 2002/07/1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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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을 읽었다. 신판에도 역자 정장진의 글이 실려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글이 실려있지 않다면 문단도 구분하지 않으며 스토리를 박진감있게 몰아가는 소설에 비해, 비약과 오류로, 거기다 너무 길게 쓴 역자의 글이 종이가 아깝다고 느낀 출판사의 의도이리라. 만약 이 구판의 역자 글이 있다면 출판사는 다음 개정판에는 좀더 설득력 있는 글로 교체했으면 한다.
역자의 글은 프랑스 출판계의 동향과 '랑트레'를 설명하는데, 재미있는 도입부였다. 하지만 그것의 말미, 그가 랑트레의 마리 다리외세크의 출현을 사강과 비교한 점은 설득력이 없었다(정도가 아니라 말이 안된다). 그렇게 다른데, 나이도 다르고 출신성분도 다르다는데 굳이 둘을 비교하는 이유가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움에 목말라는 하는 정서라니.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이야기하자면 다른 많은 예들이 있으리라. 아멜리 노통이나 엠마누엘 카레르, 베르베르 등의 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역자는 이 소설은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변신의 문제는 다른 소설에서 따온 모티브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인용하자면 '다리외세크의 소설이 사회를 풍자하고 인간 세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기 위해 변신의 테마를 사용하고 있음을 전혀 새로운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마리 다리외세크가 다룬 이 소설을 다룬 의도를 '죽음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언어가 닿지 않는 그 너머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가설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흥미있긴 하지만) 작가의 경험과 인터뷰 내용과 프랑스 혈우병 사건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신 모티브가 '아니라'고 말하고 죽음의 문제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소설 내에서 좀더 많은 근거를 찾아야 하리라. 죽음의 문제를 소설에서 본다는 점은 역자가 감수성이 풍부하는 점을 대변하겠지만, 정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소설 내에서 죽음의 생각에 대해 적은 것은 딱 한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왜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는 이상하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가가 모비딕에서 받은 인상을 이야기하고 결론짓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반면 어머니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이 소설을 굳이 정신분석적으로 보아야 할까'라는 부분, 작가는 모비딕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연관시킨 것이지 이 소설과 연관시켜 설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연결하고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망가에 대한 영향'이 보인다는 설명 이후,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없이 문학의 소명을 길게 설명한 부분은 비약이 심해서 꼭 잘라내야 할 부분이다. 그 이후에 계속되는 '죽음이 현재의 문제'라는 설명 역시 -읽으면서 불만이 계속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문장일 수 있지만 설득력을 잃는다.
'<르 피가르>지의 수다스럽기만 한 작품도, 프랑스 기자들이 마구 늘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작품도 아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보통과 다른 역자의 '용기'를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말한 것이 그렇게 엄청난 작품도 아닌 것에 대한 설명이었던 것일까. 출판사는 책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을 품지도 않은 역자를 동원한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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