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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의 빈집


고슴도치의 수수한 삶





1.


고슴도치 한 마리가 가시에 사과를 싣고 달린다.  



2.


올봄에는 음식과 옷을 너무 많이 샀거든?

이놈의 적자 인생, 잘되는 집은 다 엇비슷하고,

음식물 쓰레기와 의류 폐기물이 걱정되는 와중에 

망하는 집은 제각기 망하는 중, 오늘부터는 

수수하게 살아야지, 염치를 알아야지.


수수밭이 붉은 건

해님 달님 엄마를 잡아 먹은 호랑이 피 때문이라며? 

적자색 수수 곡알을 씹으며 큼직한 액운은 쫓아내고 

가는 손가락의 어설픈 힘에도 톡! 부러지는 수수깡처럼 

그저 잔잔한 아픔만 있는 수수한 삶을 살자고 다짐하는 오늘, 

수수밭처럼 붉은 하루, 엄마 피 섞인 호랑이 피 같은 하루에 

심심한 감사가 아니라 수수한 감사를 보낸다. 

 

3. 


고슴도치는 오늘도 가시에 오이를 업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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