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이동 約束された移動
몰락한.. 한때 은막을 빛냈던 Hollywood 스타 B는 숙박할 때마다 '모두 누군가가 어딘가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을 한 권씩 가져가는데...
그 로열스위트 객실 담당 직원(나)은 사라진 그 책들을 읽으며 B의 비밀스러운 신호?를 추적한다.
B가 가져간 책들은 콘래드 '어둠의 심연', 타부키 '인도 야상곡', 실리토 '장거리 주자의 고독',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안데르센 '그림 없는 그림책', 바움 '오즈의 마법사', 케네스 그레이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사라진 책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이다.
나는 '분노의 포도'에서 B의 흔적을 찾다가 줄거리와 무관해 보이는 거북과 귀리 씨앗의 이야기 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다가 코끼리의 길을 걷는 장면처럼 그 부분도 특별한 의미(B가 보내는 신호)를 지녔음을 곧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가 남긴 말없는 흔적을 거북처럼 옮기는 객실 담당자에게 보내는 감사의 신호라고...
그리고 나는 B가 추락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동 중이라고 믿게 된다.
비밀을 함께 나눈 마사지부 주임의 죽음 뒤에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의지일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이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줄 때 구원받는 것일까?
깊은 감동을 안겨 준 소설이다. 표제작 '약속된 이동'을 읽으며 얼마나 큰 위안을 받었는지 모른다.
어디론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조용히 내게 말해 주는 듯했다.
부재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이야기로.. 오가와 요코 문학다운 특징이랄까.. 나에게 익숙한 흔적을 보존하는 인물이 또다시 등장한다.
행렬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면, 강 하구에 놓인 다리 어귀에서 아기 코끼리가 태어난 것이었단다. 이 대행진을 축복하는 데 그보다 더한 일이 또 있을까. 할머니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구나. 아, 이건 처음부터 약속된 이동이었구나, 하고 사람들은 모두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갓 태어난 그 생명에게 기도를 올렸단다. 엄숙한 마음마저 들었지. 코끼리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어. 물론 아기 코끼리도 함께였단다. 작다고 해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걷는 거야……
마지막으로 책장의 빈틈을 다시 확인했다. 집게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책들은 모두 깊은 침묵을 품은 채 가만히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 책 냄새구나.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B가 남기고 간 것은 책을 펼쳤을 때 페이지에서 피어오르는 말의 냄새였다.
....나는 양옆의 책들을 바짝 붙여 빈틈을 조심스럽게 메웠다. 어디에도 부자연스러운 곳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책은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B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내가 돕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책장의 비밀은 나와 B, 두 사람만의 것이 되었다.
어떤 말도, 어떤 신호도 없이 그저 침묵만이 두 사람을 이어 준다.
두 사람의 비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며 나는 그 틈에 손을 넣었다. 어둠 속으로 손끝이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었다. B가 남긴 흔적이 새겨진 유적이자, 서로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을 이어 주는 지하의 뿌리였다. 그 유적을 발굴하고 비밀의 기록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B의 길을 안내하는 이들에 코끼리와 순박한 에렌디라에 이어 말로 선장까지 한 명 더해졌다.
그 어둠 속에서 B가 윙크하는 모습이 보였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조금은 뿌듯해 하는 윙크였다.
나는 틀림없이 신호를 받았다는 증표로 그가 가져간 것과 똑같은 책을 사서 페이지를 펼쳤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그의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넋 놓고 있을 여유 없어." 어머니가 말한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고 모두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B에게 힘을 북돋운다.
'가야만 한다면 가는 거야.'
B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등딱지 틈에 끼인 귀리 씨앗 한 알을 어딘가로 옮기는 거북처럼, 나 역시 B의 뒷모습을 뒤쫓아 간다.
B가 아무리 몰락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받는다 해도, 그가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전처도 약혼녀도 잡지 기자도 팬들도 모르는, 오직 객실 담당자에게만 맡겨진 비밀을 나는 계속 지켜 나간다.
그의 여정은 추락이 아니었다. 코끼리와 순박한 소녀와 선장, 그리고 이름 없는 한 가족의 어머니에게 이끌려, 마땅히 도달해야 할 곳을 향해 지금도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서 마지막에 언급된 소설)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초반(3장)을 읽다보면
가족들은 오클라호마의 농장을 빼앗기고 캘리포니아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이 작품은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대공황기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강제 이주가 결국엔 새로운 착취 공간으로 이동될 뿐이지만...)
마치 그들의 이동과 마찬가지로 육지거북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앞으로 조드 가족이 겪게 될 여정을 미리 보여 주는 일종의 예고편이자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암시하는데...
B가 투숙할 때 마다 사라지는 책장의 공백과 그 책들을 뒤따라 읽으며(모두 이동하는 서사의 책들이다. 에렌디라의 도피, 말로의 여행, 조드 가족의 서부행이나 오즈의 마법사 등등 ) B와 은밀한 교신(독서를 통해 B의 이동을 상상.. 아니 서서화)하던 '나'는 그의 마지막 방문에 사라진 책인 분노의 포도를 읽게 된다.
소설 속의 '나'는 B를 직접 소유하지 못한다(아니 그럴 수 있다 한들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B의 흔적을 보존한다. (오가와 요코 문학의 매무 중요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B는 이동하기 때문에 사라지고 나(화자)는 흔적을 수집하기 때문에 B를 붙잡는....
영화배우 B는 그가 가진 화려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 이동(어딘가로 묵묵히 이동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을 계속한다.
오가와 요코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동을 믿어주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었다.
B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그가 계속 걷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약속된 이동'이란 어딘가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이동을 기억해주고 증언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이동하면서 스스로를 잃기도 하고, 자신을 되찾기도, 되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라진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 끝도 목적지가 아니라 흔적일 것이고 그 흔적을 기억하는 타인의 행위가 이동을 구원으로 바뀌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또.. B가 읽고 가져간 책들은 그 소설 속 이동을 B자신이 이어받은 것으로 B역시도 그 길을 새롭게 걷는 인물이 되는 것일 수도...
나도 이동하고 있다. 약속된? 이동을 향해서... 걸어가고 또 걸어가고 있다.
오늘처럼 오가와 요코의 호텔 객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고, 과거 에렌디라에서는 마르케스의 사막으로 갔었고, 어둠의 심연에서는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분노의 포도에서는 66번 국도를 따라가던...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물리적으로는)현실의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계속 이동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소설 '약속된 이동'에서는 B가 책을 가져가서 공백을 남겼고 소설 속의 '나'는 그 공백을 따라서 B의 이동을 추적하는데...
내가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면 미래의 누군가(그것이 나 혼자일 뿐이라도)는 그 문장을 따라 나 삶을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ㅋㅋ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취미와 즐거움으로, 단순히 좋아서 남기게 된 지난 기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블로그만 해도 20년이 넘어가는데... 때때로 과거의 기록을 다시 바라보면 이 기록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보인다.
그 별것 아닌 기록들을 보게 되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증언하는 특별한 느낌이랄까?
친구도 없고 외롭지만 이렇듯 기억해주는 다른 사람이 없어도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증언해줄 수 있다는 믿음...
종교도 없고 필요치도 않는 나는 구원이라는 말을 종교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완전히 소멸하지 않게 해주는 것에 나는 큰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도 모두 시간처럼 결국엔 지나간다. 읽었던 책도, 생각들도, 기쁨도 감동도, 그 시절의 그때의 나도 다 지나간다.
그렇지만 기록을 남기면 아주 작더라도 흔적이 생기고 그 흔적들(그것이 한 문장이든 사진 한장이든)은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와준다.
어쩌면 지금 내가 블로그에 작성하고 있는 이 생각들 자체도 글로써 미래의 나에게 보내놓는 작은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여기 있었고, 이렇게 생각하던 나는 그렇게 이곳을 지나갔다.. 하고...
어느 예정된 목적지에 간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사라져가는 것을 다음 시간으로 계속 데려간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구원이다.
소설 읽기라는 것이 전혀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미래에도(그럴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어디에 도착하려 또는 어떤 사람이 되려 읽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읽고 싶어서 읽고 생각하고 싶어 생각도 하고 단지 좋아서 기록도 한 것이다.
그렇게 '약속된 이동'의 메세지처럼, 이르러야 할 장소가 어딘지 무엇인지 몰라도 계속 나 역시 이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되돌아보니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꽤 멀리 와 있다. 그리고 목적 없이 걸었는데 작은 나만의 길이 생긴 것 같아. 쑥스럽지만 흐뭇하다.
별 것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연결과 구원의 매개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블로그의 기록은 내 이동의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에서 주목받고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 누군가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내가 지나온 시간이 정말로 사라지지 않았음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지도이자 기억의 장소이길 바래왔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서... 그리고 내가 무엇을 보고 읽었는가보다 나는 무엇을 따라서 함께 걸어왔는지, 어떤 작품들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변해왔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계속 걷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준다면 그것만으로 구원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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