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이라 해야 할까?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페어링 되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2016년(국내 번역출판은 2017년) 작품 '저물 듯 저물지 않는'(なかなか暮れない夏の夕暮れ)인데...
이 소설,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シェニール織とか黄肉のメロンとか 2023년, 국내 번역출판은 2024년 12월)과 나란히 놓고 보면 어딘가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이나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은 특별한 사건이나 깊은 이야기 없이 그저 흐르는 평범한? 시간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이랄까?
아니면 평범한 날들 그대로의 이야기라고 해도 되고, 우리의 살아가는 시간과 사람들을 담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징은 50대의 일상이라는 점이고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50대의 남성 미노루를 축으로 해서 진행되는(그렇다고 남성들의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이야기이고, 후자는 50대의 여성들(정확하게는 리에, 다마코, 사키)을 중심에 두고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신경이 쓰여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막상 완독 후 비교하다보니 사실 앞서 말한 남성, 여성들로 굳이 분류할 필요도 없었던...
과거 저자의 인터뷰를 읽었던 내 기억이 맞다면 '(의외로 없고 잘 다루지 않는)50대의 주인공이 바라보는 일상의 시선을 그려보고 싶었다'던 에쿠니 가오리의 말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많은 독자들이 남성편, 여성편으로 해석했다는 점에 수긍?하던 내용이 떠오른다.
먼저 '저물 듯 저물지 않는'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보자면....
제목의 뉘앙스 때문이었을까?
표면적으로는, 아니 전체적으로는 한여름의 늦은 저녁(저물 듯 저물지 않는 시간대? 나이에 대한 은유겠지만)에 각자의 관계 안에서 조용히 아스라히 교차되는 감정들이 담백하게 표현되는 소설이었다. 저녁이 깊어가도 끝나지 않는 상태랄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와도 같은 역활을 하던 (미노루가 읽던)액자와 같은 소설 속의 소설들의 구성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고민없이 늘 소설을 읽고, 차를 마시고, 이유 모를 공허로 여름의 저녁을 바라보는)을 살고 있는 50대의 남자 주인공 미노루와 그의 누나가 독특함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소설 전체를 놓고 보면 미노루를 축으로 한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이 펼쳐내는 여러 시점의 말들 그리고 침묵들의 교차가 이 소설의 방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제목처럼 아직 끝난 것도 지나간 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서로 마주하는 은근히 번지는 듯한, 문득 살짝 흘리듯한 작은 느낌들...
이미 청춘은 지나갔지만, 아직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시간의 딱 그 갈림선 위에서,
그 애매한 저녁빛이 내려앉은 것처럼 어딘가 흐릿한 인물들의 느낌과 감정들의 간극과 접점이 소설의 전체 이야기가 아닐까...
전반적으로 무심한 듯한 덤덤한 말과 담담한 생각들 속에는 뒤돌아보는 기억에 따른 야속함과 또 그 나이 때에 가능한 건조한 태도랄까?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해주는 차분한 위로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이런 것 역시 그런 한순간일 것이라고 나기사는 분류해본다. 훗날이 되어서야 그때는 행복했다고 깨닫는, 가족이 보내는 일상의 한 장면.
이것은 그런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있지만, 무엇과 도 바꿀 수 없는'이라고 형용하는 가족의 단란한 순간, 먼 훗날이 되어서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때는 행복했다'고 깨닫는 유의 순간이다. 그런데 왜, 때로 자신은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일까, 나기사는 일어나 우윳빛 유리창을 연다.
문득 나기사는,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지, 하는 감상에 젖는다. 어디 하나 특별하지도 않고 어느 가정에나 있을 수 있는 한 장면이고 시간이지만, 확실하게 지나가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미노루가 주인공이지만 사실 소설을 읽고 나면 떠오르는 것은 미노루가 아닌 다른 인물들의 말들이었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에서는 나기사가 마치 지나간 일상은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던 것들과(딸의 가방에 수를 놓고,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거실에는 점심에 먹은 가지 튀김 냄새가 남아 있는 평범한 순간에 문득 생각하던) 또 이 (행복한)순간을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모습들이 묘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사야카가 말 중에서 원하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느낌과 의문 또한 한동안 공감했던("나이가 들면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원하는 게 많으면 피곤하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이 과연 편안하기만 할지도 확신하지 못하지.")..
마지막으로 오타케가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겹쳐보는 장면 역시도...(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다가 지금의 아이들은 자신_오타케_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할 거라는 대목에서 나 역시 가끔 느끼는 세대와 시간의 간격을 떠올리고 있었다.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의 경우에는 리듬도 속도와 벡터가 모두 다르지만 대학시절 출석부에 나란히 있었던 우연으로 친한 친구가 되어 중년에 이르기 까지 인연을 이어가는 여성들 그리고 그 주변에 관계하는 지인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또 '저물 듯 저물지 않는'하고 살짝 방향이 다르기도 한데, 관계하는 (과거부터 알고 지낸, 과거에 알던)인물들을 만나면서 환기되는 그 옛날의 자신을 반가워(때론 불편?해) 하던 모습들도 그려지고 있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에서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게 씁쓸한 회상 내지는 감정과 관심이 크게 반응하지 않던 것들과 대조적이다)
항상(그리고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랜 친구(아주 예전의 지인)를 만나면 그때 뿐일지도 모르지만(또는 원치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특별하지 않나...
예전의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현재를 확인하며 놀라?기도 하지만, 재미난 건 그 사람만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와는 아예 다른 모습인데 분명히 내가 살아 낸? 시간이었던 그 시절의 나를 얘기하고 떠오르게 되니....
이 작품은 50대 여성 세 사람의 우정과 일상을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 에쿠니 가오리는 (당연하게도)그녀들의 과거를 되짚으며 극적으로 그린다거나 그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하려는 초보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며, 1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끝나지 않는(않을 것 같은) 정서적인 유대를 담아내고 있었다.
지금의 일상 속에서 별거 아니게 문득 과거가 떠오르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또는 잊었던) 기억이 뜻밖에 선명해지는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었다. 상상과 기대가 심하게 덧붙어 있던 지난 날의 생각과 의미들... 그게 그녀들의 셔닐과 포크파이 모자, 캔털루프 멜론처럼...
소설을 읽고 나니...
사랑하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간관계보다는 따듯한,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것과 상관없이 그냥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솔직히 부러웠다. 그냥 곁에 있고 싶은 사람, 그리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녀들처럼 있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참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었던...
https://blog.naver.com/mix1110/224436379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