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는 드문 피부를 가진 소녀, 사샤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겠다. 남들과 다른 것은 비단 외모 뿐만은 아니다. 인텔리겐치아라는 자부심을 가진 엄마의 기대 그리고 허무주의자로 비춰질 수 있는 무기력한 아빠와의 가족구성도 사뭇 특이하다. 그들 사이의 공감은 있어본 적이 없고 서로에 대한 요구만 가득할 뿐이기 때문에 가족은 항상 소원한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던 중 미국행을 감행한 아빠를 제외한 사샤와 류보프만이 가족으로써 삶을 지탱해 나간다. 무엇에도 흥미 그리고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갈색 피부색의 사샤만이 엄마에게 남겨진 희망이었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엄마, 류보프는 사샤에게는 아빠를 떠나가게 한 못된 엄마일 뿐이었다. 엄마의 요구사항은 항상 어려운 것이었고 학교에서의 힘든 나날을 고백하기도 어려운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게 가족은 다른 곳을 향해 달려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빠져버린 첫 사랑의 결과는 참혹했다. 어린 나이에 가진 아이는 결국 사샤의 동생이 되었고 엄마의 두 번 째 딸이 되어버렸다. 이것 또한 사샤를 위한 길이라는 엄마의 믿음은 굳건했기에 어린 딸을 두고 모스크바의 미술 학원으로 향하게 된다. 재능은 어차피 없는 것이었고 엄마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어서 미국인의 신부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다.
꿈과 자유를 한껏 펼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꿈은 도착과 더불어 산산히 조각난다. 어설픈 결혼 예행연습은 그렇게 맥없이 끝났고 결국에는 식모살이를 하러 타라칸씨네로 입성. 러시아 유대인들을 위한 자선 모임에도 참석하고 일도 고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의미도 없고 희망도 없는 나날이었다. 제이크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은 뒤 그 집을 나오긴 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자신을 부정하는 아버지와 새엄마의 도움으로 이민국의 허가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딸과 함께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시간은 부모자식간의 정마저도 옅게 만들어 버리고 죽은 엄마 대신에 자신의 딸을 돌보기도 두려운 상황이다.
엄마가 죽고 딸은 미국으로 데려왔다. 장애를 가진 제이크와의 연애도 이어가 보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생활은 계속 될 것 같다. 러시아에서도 미국에서도 사샤는 항상 주변인이요 낯선 이의 모습처럼 괴이쩍다. 사샤가 주체가 되는 이 책의 내용만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렇지만. 그녀의 이야기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서도 묘한 공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저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의 모습으로 미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던 것이 이 책을 좀 더 실감나게 만들어준 요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