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 영화 <쇼아> 비교...
강원조 2002/07/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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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책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 다. 지난주 <쇼아>란 영화를 보고서,, 홀로코스트와 관련해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런 잔혹성을 띨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어떻게 19세기 이래의 민주주의 전통이 한순간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무너질 수 밖에 없었나?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나의 어설픈 진보에 대한 믿음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즉 홀로코스트는 이성의 과잉의 산물인가 결여의 산물인가,, 아니면 이성의 확산을 통한 인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믿음 자체가 허구인가?
마지막으로 가장 당혹스러운 문제.. 홀로코스트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탄압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찌의 유태인관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관 상의 큰 차이점을 발견해 내기란 힘든 것 같다. 특히 힘있는자가 없는 자를 인간쓰레기 취급한다는 점에서...
슈피겔만의 <쥐>는 만화다. 따라서 읽다는 표현대신 보다라고 했다. 이 책은 작가의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란 사건을 경험하게된 경위, 그 속에서의 체험, 그리고 이후 이로인한 상처를 회고담 형식으로 묶은 것이다. 역시 다른 것보다 내 흥미를 유발한 것은.. 아버지의 흑인관이다. 작가는 아버지와 인터뷰과정도 책 속에서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하루는 작가부부와 아버지 부부가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한 흑인이 길가에 서있었고,, 마침 행선지가 비슷한 방향이라 작가의 아내가 차를 세워 그를 태웠다. 다음은 작가 부부와 아버지간의 대화이다.
아버지 ; '믿을 수 없군! 여기 검둥이가 앉아 있다니.' '난 줄곧 저 검둥이가 우리 뒷자리 물건을 훔쳐 가는지 지켜 봤단다.' 작가 ; '말도 안돼요! 어떻게 아버님이 인종차별을 할 수 있죠? 흑인에 대해서 마치 나치가 유태인 애기 하듯 하는군요.' 아버지; '검둥이는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어'
참으로.. 홀로코스트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유태인이 가진 인종차별 의식이란 것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다. 몇년전에,, <바리케이트>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주인공은 서울 변두리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리고 주인공 아버지는 미국에서 불법취업 노동하다 산업 재해를 당해 집에서 병마와 싸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역설적인 것은.. 주인공이 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데 제일 앞장섰다는 점이다.
당시 그 영화를 보면.. 아니.. 일제 30년 강점기를 겪은 것 은 물론이거니와 이 이전에도 외세에 의한 지배로 큰 고통 을 겪은 우리가 타민족 노동자에게 인종적 탄압을 가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부조리한 일인지 생각했다. 참으로.. 혼란스럽니다. 나찌의 살인공장, 즉 아우슈비츠, 트레블린카, 첼름노, 소 비보르 등의 수용소가 폴란드에 밀집해 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바로 폴란드에 존재했던 반유대주의 정서 덕분이었다.
영화 <쇼아>를 보면,, 수용소 주변에서 집단학살을 목격했던 폴란드인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 뉘앙스가 나찌 관계자의 증언과 비슷했다. 홀로코스트 는 유감스런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었으나, 사실 내가 유태인 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극단적으로 '꼴좋다'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는 식이었다.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폴란드인이야 말로 수세기 동안 러시아에게 있는 픽박 없는 탄압 다 당한 설움의 민족아닌가! 이들의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에 일조했다는 사실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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