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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부터 바로 장 코르미예가 쓴 체 게바라 전기를 읽고 있는데,, 역시 한 선배가 신문에 쓴 서평처럼,, 인간 게바라를 이젠 '신'으로서... 전사 그리스도 로서의 위치로 격상시키고 있다.. 체 게바라의 신격화가 우리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다... 혁명이 지나간 자리에,, 이젠 그에 대한 기억,추억,신화 만 남았다는 건가... 혁명을 신화가 대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개선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그래도 크게 본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의 삶에 대한 용기, 열정이다.. 그렇게 자기가 살아가는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가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오늘 죽는다 해도.. 후회는 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인간은 결국에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계속 비판을 해볼까??내 후배랑 이야기 해보니,,그 친구 이야기는 ..꼬르미예 식의 좌파 상업주의 라는 실랄한 비판까지 나왔다. 물론,,게바라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독특한 무언가가 있었고.. 아니,,어느집에서 자기 아버지가,,어린 꼬마에게 세상의 부조리를 이야기하고,,혁명가가 되라고 권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게바라가 동네 골목에서 전쟁놀이를 할때,,당시가 스페인 내전 기간인지라,, <공화파> 대 <프랑코파>로 나뉘어 놀았다는 대목에서,,참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분명히 말해주건데,,체 게바라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 대륙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한없이 깊은 사랑..하층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그들을 착취하는 미국과 그 하수인에 대한 격렬한 분노..그것을 모두 뒤집어 새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혁명에 대한 집착, 편집증..그리고,,천식이라는 육체적 고통.. 게릴라 생활이라는 것이 늘상 그러하듯이 일상적인 굶주림, 질병 그런 빡센 생활속에서도,,독서 등의 자기계발뿐만이니라,,민중에 대한 교육에 헌식적이었다는 것..속에서,,장 폴 샤르트르가 극찬한바 대로 '20세기에서 가장 완전한 인간'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맥락에서 였을까?

난 죽었다 깨어나도,,이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그리고,,21세기에 체 가 태어났다면,,지난 세기 그가 살았던 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하늘나라 저편에서,,체가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는 자신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본다면,,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내 생각에는 ..씁씁할 미소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0세기에 대한,, 그 세기의 혁명과 그것에 대한 기억, 추억만을 가지고..21세기를 살아갈 수는 없다..언제까지 후일담,,그땐 그랬지 식으로..술자리에서 설이나 풀면서..몸버리고,, 시간도 낭미할 건가??? 체도 이미 우리가 넘어서야 할 거대한 산이다..체 게바라나, 모택동식의 게릴라 전이..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물론.. 멕시코에서 지금도 무장투쟁 중인..산드니스타 반군에게 뭐라 할말은 없지만,,산악 게릴라전도,,완전한 무결한 투쟁의 정답이 아니라,,자본주의를 지양하려는 몸부림 중의 하나로 전락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으로,,게바라의 새로운 인간 창출이라는 사상에 대해서도 ..난 비판적이다..게바라 가 추구한 새로운 인간은,,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이야기한 근대인의 범주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봤다.도식적으로 이야기 하자면,,게바라가 추구한 인간도..노동중독증에 걸려버린,,노동에 관한 근대인의 무의식 을,,넘어서지도..비판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 생각을 말해본다면,,노동중독형 인간상을 지양하기 위해서는..게으름,,느림,,에 대한 보다 깊은 천착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내 주장은..게바라의 신화화는 무의미하며,,21세기적 고민의 틀에서..게바라도 결국 역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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