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무엇을타고나는가 #케빈J미첼 #과학책 #유전학
#오픈도어북스 로부터 #도서제공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는 분자유전학을 전공하였으며 발달 신경유전학을 가르치는 학자이다. 그는 유전 프로그램과 인간의 능력과 지각 상태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있고 자유의지에 관심을 가진 학자라고 한다. 한마디로 유전적 요인이 인간 능력의 다인 건지, 자유의지가 더 압도적인 건지에 관심이 있는 학자이다.
그는 연구를 통해 나름의 대답에 이르렀다고 자평하는 모양이었다. 스티븐 핑커도 본성과 양육을 본서의 주제라 언급하고 있는 본서의 전반부는 유전적 요인이 인간의 특질을 좌우하는가 양육이 압도적인 영향력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들인 장이다. 총 11장의 저서에서 5장까지 또는 6장까지는 명백히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인 장이다.
저자는 유전적 요인이 압도적이며 양육 다시 말해 환경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영향력만을 미친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런 답에 이른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 중 몇을 들자면 하나는 심리적 지적 행위적 작용 등 인간의 특질은 유전체 단위보다 뇌의 배선에 따른다고 하면서 저자의 연구로는 뇌의 배선도 경험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타고난 데 따른 것이라 한다. 또 하나는 쌍둥이의 지능이 성장 과정에서 차이가 나는 듯하다가도 성인이 되면 비슷한 수준에서 머무른다는 걸 들고 있다. 이후 성 선택에 대한 장에서 일란성 쌍둥이의 동성애 가능성이 일치하는 경우가 30~50%에 이른다고 하는 바도 저자는 유전적 영향이 동성애 성향을 가른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뇌의 배선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특정 자극이 다른 자극으로 대체된다면 반응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쉬운 예로 먹을 것에 강하게 연연하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도 양육자가 이거 있다가 먹고 뽀로로 보자는 식의 자극원을 주는 환경으로 바꾼다면 아이는 참을성이 없는 반응성을 보이는 뇌의 배선에서 다른 자극을 찾으며 눈 앞의 자극을 참아 넘길 수 있는 반응성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경제계층에서 중위층과 하위층 아동과 성인 비만율이 상당하지만 부유층에서는 비만율이 낮다. 이는 자극원을 다루는 환경이 다른 데서 오지 경제 계층에 따라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또 형태장 이론을 고려한다면 쌍둥이의 지능지수가 비슷해지는 것은 인간의 지능적 차원의 반응성이 상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심리적으로도 자기보다 나아가는 쌍둥이를 보고 다른 쌍둥이가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아 성인이 되어서는 지적 자극에 민감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 선택에서 동성애 성향이 일치하는 경우가 이란성 쌍둥이는 20%이지만 일란성 쌍둥이는 30~50%인 것을 저자는 유전적 영향력이 유의미하다는 증거로 보는데 이는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에게서 라포르를 보일 가능성, 동질감의 요소를 찾으려 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한 단정이 아닌가 싶다. 유전적 요인으로만 보기보다 심리적 요인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유전학자이다 보니 대부분의 고려 사항에서 유전적 요인에서 답을 찾으려고만 하지 다른 반박의 경우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통섭적 연구가 드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분화한 학문의 영역들이 통섭적 연구를 할 계기를 갖지 않고 자기 폭에만 갇힌 연구를 이어가며 아전인수식 답을 내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 듯하다. 이 시대에는 통합적인 연구와 성과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연구자들이 고려해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본서의 부제가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인데 그를 고려한다면 후성유전학에 콧방귀를 뀌고 뇌의 신경 가소성이나 유연성도 나이가 들수록 둔화되고 저조해진다는 저자의 입장은 유전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과거의 정의로 회귀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를 우려했는지 저자도 말미 즈음에 우생학을 언급하기도 한다. 두둔하는 건 아니고 우려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물론 노화를 이기는 유전자는 없을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저자는 유전자 외에 모든 가능성을 가뿐히 배격하고 있고 때로는 동의하기 힘든 논리들로 전개되기에 의아할 때도 있다.
학자들의 연구는 과학 분야라도 어느 시절까지는 진리로 통용되던 것이 어느 시절부터는 번복되는 경우가 잦다. 모든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기에 읽는다기보다는 이 시절의 알음알이는 이렇구나로 이해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독서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런 방향에서 정말 좋은 책이지 않은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