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대표작은 타임머신, 투명 인간, 우주전쟁, 모로 박사의 섬 등이 있다. 모두 영화화되어 어떤 영화들은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유명 소설들은 그렇다지만 이 책 [눈먼 자들의 나라]와 같은 단편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리뷰어 본인도 타임머신과 투명 인간, 우주전쟁을 제외하고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본서를 읽으며 짧으면서도 선명한 은유가 담긴 이 책이 매우 인상적이기도 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눈먼 자들이 유럽 어느 계곡에서 터를 잡으며 세월이 흘러 눈먼 자들의 작은 사회가 이루어졌고 그곳에 눈이 보이는 누네즈라는 남자가 사고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는 ‘눈먼 자들 가운데서는 외눈이 왕이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이 그들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 확신했으나 눈먼 이들이 이룩하고 지속해온 사회에서는 보인다는 개념도 시력에 의해 정의된 모든 개념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눈먼 자들 가운데에서 그는 모자르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그런 속에서 누네즈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결핍이 보편인 세상에서는 그 결핍된 한계 이상을 보는 자가 결핍된 이가 될 뿐이다. 누네즈는 이곳에서 노예나 하인 정도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런 삶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해 나가고 있을 때, 메디나 사로테라는 눈먼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누네즈의 역설적인 열등한 특징들에 그녀의 가족들은 반대하고 누네즈의 열등성을 없앨 수 있다며 눈먼 자들의 의사는 그의 눈을 파내는 수술을 하자는 제안을 한다. 누네즈는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메디나 사로테는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하자며 누네즈를 설득하고 누네즈는 그녀의 설득에 수술을 받으러 가려 길을 나선다. 그러다가 눈먼 자들의 마을의 산 위로 올라가 그 마을과 세상의 경계인 산 위에 누워 맑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다.
이 짧은 단편에 담긴 은유는 무척이나 선명하고 명백한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소설이 담긴 장을 넘어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을 풍부하게 해주는 [깊어지자]에 장들을 보며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문제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편집자의 말]에서부터 다소 충격이었는데 편집자는 작가가 ‘결핍된 사람들의 사회를 이상사회로 그렸다’고 ‘정상’이라는 기준이 상대적이란 것을 그려냈다고 피력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전혀 이런 감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감상이 있을 수 있는 책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루묵의 갖은 양념]이란 장에서는 이 소설을 진정한 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보는 은유로써 해석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관점을 돌아보거나 [정상성에 대한 고찰]을 하는 장도 있다. 모두 짧은 이 소설에 대한 다층적인 감상과 해석을 가져 보도록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나로서는 본서가 한계가 다른 이들 간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문제가 클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예수가 등장하자 그를 죽이기까지 한 유대인들(십자가형 지시는 본디오 빌라도가 했지만 예수가 사형당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대인들이니까)과 세상은, 이런 한계의 경계가 예수와 그들 사이에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나 대중이 보는 것 이상을 보는 자는 억압당하고 배척당해왔다. 인류사에 남아있는 현자라는 자들은 대중이 보는 것 이상을 본 것이 아니라 대중이 보는 것을 달리 표현해 전달할 줄 아는 자들이 다였지 않나? 대중의 관점 그 이상은 외칠 것이 아니라 숨길 것이다. 남겨야 한다면 은밀히 다음 세대만 볼 수 있을 정도의 방식으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소설에서 수술로 은유된 것과 같은 제재를 받게 된다. 기독교 체제에서 기독교인들이 저들은 한계 이상일 것만 같다고 여긴 이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는 역사에도 남아있다. 마녀사냥에서 숱한 이들이 그랬고 잔 다르크가 그랬고 조르다노 부르노가 그랬다. 세상이 허용한 경계까지만 빛나야 한다. 그 이상 빛나는 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아니면 세상의 경계 밖에서 빛나야 한다. 세상으로 돌아오면 그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본서는 생각해 볼 만한 은유로 다층적인 감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내가 가진 감상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앞서 언급한 본서의 후반부를 보면 다채로운 감상이 남을 책이란 것을 충분히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웰스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은유가 깊지만 이 단편 역시 약하지 않다는 감상을 남긴다. 만나보실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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