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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첫 태양
  •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
  • 에디스 시로
  • 18,000원 (10%1,000)
  • 2024-12-04
  • : 4,040

출판사 히포크라테스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출간에 관심이 깊이 갔던 이유는 작년 3월 즈음 허리와 골반 부상을 심하게 입어 잠시 하반신이 마비되어 보내고 난 후 오래도록 막막하고 답답하고 암흑의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듯하던 심정이 잦아들었었기 때문이다. 난 그것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라고 생각했다. 계속 강박적으로 부정적인 생각들을 되뇌이고 되새기고 괴로워하던 내적인 괴로움도 그 후 어느 시기가 지나고부터는 다소 잦아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모든 게 지나갔구나, 나는 나았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시 어느 순간부터 무미건조하고 무채색의 공간에서 싸늘한 바람을 맞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을 직시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모든 걸 부정하고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려고만 했다. 그러면서도 부상 이후 나는 달라졌다고 생각하려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본서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태에서 PTG(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해준 책으로, 치명적인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겪으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정신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의 사람들이 그 과정을 이겨내고 보다 나은 자신으로 성장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그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하는데 완전히 파괴되고 고립된 자신을 수용하고 나서 성장하는 과정에는 자신의 힘과 의지만이 아니라 안전감과 안정감을 주는 보호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완전한 고립을 선택하는 경우보다 이해받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야 성장의 여정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본서의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보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부모들이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부모들에게 “미안합니다. 우리가 힘껏 세상을 바꿨다면 다시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며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트라우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사회적 역사적 규모의 집단 트라우마도 있으며 집단 트라우마로부터도 PTG로 나아가기도 한다. 물론 어떤 개인도 어떤 집단도 성장하기 위해 되돌릴 수 없는 희생을 겪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미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면 나아야만 할 일이다.

 

본서를 보면 개인이나 집단의 트라우마는 전염되기도 한다. 그리고 PTG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에게 미친 영향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을 포함한 타인이 괴로움에서 빠진 과정을 보며 자신도 트라우마에 빠지기도 하고, 타인이 그 괴로움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자신이 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계승된다. 트라우마는 유전자의 외부 기록을 통해 유전되기도 하며, 트라우마를 이겨낸 성장(PTG) 또한 강력한 면역 항체가 유전되듯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비유가 아니라 후성유전학 연구가 그러한 결론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나아야 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괴로움 속에 던져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그들 또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도 또 다음 세대에게 트라우마를 유전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며칠 전 계엄령이 있고 긴장감 속에서 뉴스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격정들이 우리 군인들의 사고 구조도 바꾼 것이다. MZ세대 군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격정에 싸인 시민이 몸싸움을 하려 달려드는 상황에서 오히려 시민의 등을 다독이며 괜찮다며 달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여정이 현재 군인들의 의식을 성장시킨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아무리 아픈 상황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에 성장의 과정과 영적 성숙이 그려낸 진솔한 문장들이 무엇보다 내적 치유의 길로 다가서도록 이끄는 것 같기도 하다. 에디스 시로와 그가 인용한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성장은 모든 것이 뚫고 지나가도록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경우처럼 일상이 다시 이어진다고 나은 것도 아니다. 회복력이나 동결은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감당하도록 하지만 아무리 타인이 보기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나간다고 외상 후 성장을 이룬 건 아니다. 오히려 부서지고 파괴된 사람들이 성장한다. 진정으로 나으려면 무던한 척하지 마라. 아무 일 없는 척 연기하지 마라. 아프다는 걸 괴롭다는 걸 그 절망감을 표현해야 한다. 본서에서 인용하자면, 유충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 안에서 흐물흐물한 상태로 녹아내린 액상 상태가 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또 킨츠기 도자기의 경우처럼 우리는 부서진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으며 변화된 자신과 세계를 이어 통합할 수 있고 영적으로 성장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본서의 문장들은 실제적이고 치유적이며 아름답다. 그건 성장과 성숙을 가져오는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이 당신을 치유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끌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그런 바람이 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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