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인공지능으로 풍요가 극에 달한 시절이란 그 국가가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자동으로 불러들이는 걸까? 영국이 배경인 <휴먼 어디에 있나요>를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 로봇을 사용하는 시대를 상상할 때 나오는 배경이 갑자기 19세기 영국의 그것이다. 산업혁명의 역군이자 전 세계에 대영제국의 국기가 휘날리던 그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이 황폐한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하나의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그의 이름은 찰스였다. 지금은 언찰스다. 찰스였지만 이름을 빼앗기고 찰스아님이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황당하지만 웃기다. 집사장이었지만 주인님을 죽여버리고도 집사장으로 남고 싶은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농담도 여기까지 가면 진지하다. 이 진지한 농담같은 소설은 이 세상의 뛰어난 소설가들의 맥락을 가지고 제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일단 재밌다.
이런 영국식 유머가 그리웠다.
한동안 이런 영국식유머를 잘하던 작가도 있었는데 이런저런 추문에 휩싸이는 바람에 더이상 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시니컬하고 자조적이고 자신의 근본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맥락을 가지고 쉬지 않고 웃기고 싶어 좀이 쑤시는 사람이 글 뒤에 어렴풋이 비쳐보인다. 이 영리하고도 바보같은 농담들 사이에 기술과 로봇과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한 존재들이 삐죽빼죽 튀어나온다.
우화같기도 하고 옛날의 소설 거장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같기도 한 소설은 제 이름을 잃어버린 언찰스의 등에 업혀 제멋대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제가 있을 곳을 찾아다닌다. AI가 어떻든 로봇이 어떻든 주인님이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산책하기를 바라는 시종이 있는 세상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게 재밌다. 영국에서 제인오스틴이 유행하고 브리저튼이 끝나지 않듯 한국에서도 늘 사극이 나오고 호통치는 왕족과 유교맨들이 쏘다닌다. 한국인의 마음 속에도 언제나 있는 고향과도 같은 풍경 속에 내가 똑똑히 봤슈를 외치는 머슴이 존재하듯 영국인들의 마음 속에도 엄격하고 완고한 얼굴의 시종장이 자존심을 부리며 다림질을 제대로 하라고 외칠 것만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영국인들이 한 500년정도 더 살아도 절대 버리지 못할 것 같은 풍경속에 자아정체성을 찾아다니는 AI로봇 시종장이 나온다.
언찰스가 나에게도 맛있는 샌드위치와 차 한잔 따라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