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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
  • 헨드릭 빌렘 반 룬
  • 19,800원 (10%1,100)
  • 2018-01-12
  • : 318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는 1925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한국에는 2000년도에 <똘레랑스>라는 제목으로 먼저 번역되어 나왔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지금,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다시 출간된 것이다. 제목이 바뀐 연유에 대해서는는 '역자 후기'에서 설명하고 있다. 2000년도에 번역이 될 당시에는 홍세화의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한국사회에 '똘레랑스'라는 화두가 처음 던져진 시기였다. 그 당시에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던 똘레랑스는 원어 그대로 읽히며 한국사회에 많은 화두를 던질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은 '관용'이라는 단어가 '똘레랑스'의 의미로 우리의 일상에 더 친숙하게 정착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똘레랑스' 혹은 '관용'이라는 제목이 예전만큼의 환기효과가 없다는 판단 때문에 제목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추측이지만 최근 출판계에서 "ㅁㅁ로 읽는 세계사", "ㅇㅇ로 보는 역사" 같은 류의 제목을 단 역사교양서들이 잘 팔리는 흐름에 맞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바뀐 제목이 충분히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만하면서도 책의 본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걸리는 지점은 이 책은 사실 '세계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철저히 유럽사만을 서술한다. 비록 이에 대한 해명도 역자 후기에서 짚고 넘어가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사만을 서술하는 책의 제목에 "세계사"라는 명칭을 붙였을 때 불러일으키는 오해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유럽 이외의 세계를 배제해 서술하는 것은 정확히 '세계사'도 아닐 뿐더러 서구 유럽을 우월한 세계의 중심으로 놓고 비유럽 세계의 역사를 중요하지 않고 열등한 것으로 보는 편협한 관점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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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헨드릭 빌렘 반 룬은 미국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였다고 한다. 1882년에 태어나 1944년에 생을 마쳤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인 1925년에 초판이 나왔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전체주의가 세계에 확산되던 1940년에 다시 책을 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와 이 책이 쓰인 시기인 1925년과 1940년의 시대적 상황을 함께 생각하면서 읽으면 굉장히 묘한 독서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역사서라고 생각하고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조금 당황하게 된다. 첫 챕터인 "0장 -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도"는 먼 옛날 인류의 이야기를 마치 신화나 전설을 들려주듯 서술한다. 무지와 편견에 맞서는 관용의 관점에서 기존의 유럽사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책 전체의 메세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우화인 셈이다. 


옛날 옛적 인류는 '무지'라는 골짜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7.p)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다음 웹툰 <동쪽으로>가 생각나기도 하고 영화 <매드맥스>나 <설국열차>까지도 연상이 되어서 책의 초입부터 완전히 내 흥미를 가져가버렸다.

1장부터 30장까지는 저자의 관용(그리고 불관용)에 대한 독특한 역사적 관점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 로마제국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르는 시기까지 유럽사에서 '불관용'때문에 박해받고 억압받은 사례들과 관용의 실천을 행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탈레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하기도 하고, 로마 제국의 개방성과 그 한계점을 역시 관용/불관용의 측면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미 정립된 유럽사를 관용이라는 관점을 통해 다시금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저자는 (책이 출간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현실에 맞는 역사의 교훈, 관용의 정신을 설파하려고 한 것 같다. (불)관용의 관점으로 유럽사를 바라봤을 때, 이 책이 겨냥하는 가장 주요한 타켓은 바로 종교이다. 카톨릭부터 종교개혁 이후의 신교까지 종교의 배타성과 (타 종교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저자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 섞인 문체로 비꼬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러나 세 번째 승객이 몰래 그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성스러움과 덕행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가면 아래 감춰진 얼굴에는 잔혹함과 증오가 엿보였다. 그의 이름은 바로 '종교적 불관용'이었다. (92.p)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묘하면서도 재미있었던 부분은 "9장 출판물과의 전쟁"에서 저자가 자신이 지금 책을 집필하고 있는 시기의 구체적 상황을 언급하면서 앞날에 대한 전망을 말하는 문장들이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났다.구시대의 질서가 완전히 뒤집혔다. 황제나 왕정은 무너졌고, 무책임한 비밀 위원회가 관련 대신들을 몰아냈다. 세계 곳곳에서 통치자의 긴급칙령으로 신이 공식적으로 사라졌고, 삼류 경제학자가 고대의 모든 신과 모든 예언자들의 후계자로 등장했다.물론 이것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문명세계가 다시 회복하려면 수세기는 걸릴 것이고 그때에 나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현재로서는, 쉽지 않겠지만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지 어쩌겠는가.

여기에서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과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저자는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문명세계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나는 21세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이기 때문에 이 책이 쓰이고 난 뒤 얼마 안되어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임을 안다. 1차의 공포에서 벗어나 회복의 희망을 바라보고 문명세계의 굳건함을 믿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 보여주는 낙관은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다른, 최악의 시한폭탄이 터질 것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1차의 공포를 수습하고 희망을 믿는 자를 바라보니 무섭기도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는 1925년에 낙관적인 전망으로 쓰였던 것을 1940년 개정할 때 빼고 다시 그 시대의 상황에 맞춰 쓴 것이라고 한다. 바뀐 에필로그의 제목은 "해피엔딩은 아닌 것 같지만"이다. 관용의 확대와 발전을 낙관하는 방향으로 쓰여졌다는 1925년판의 마지막 장에서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현실의 나쁜 상황을 인정하는 1940년판으로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같지만"을 붙임으로써 희망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저자의 관용에 대한 믿음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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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책을 읽으면서 이 때는 이랬지만 지금은 과연 이것이 적용이 될까 하는 부분들이 조금씩 있었는데 이는 역시 1925년과 2018년이라는 시대의 간극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한계같기도 했고, 읽으면서 들었던 의구심들을 역자 후기에서 정확히 짚어주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공적 불관용과 사적 불관용을 나누고 사적 불관용을 그저 불편함으로 치부해버리는 관점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현대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지향하는 관용의 정신과 태도는 여전히 또다른, 어쩌면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발현되는 불관용의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 같다. 역자 후기에서는 '관용'이라는 단어가 똘레랑스라는 의미를 품고 우리의 일상에 정착되었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일상어가 된 만큼 오히려 더 '관용'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가 가벼워지고 퇴색되거나 망각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금의 한국사회의 관용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과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까 하는 의문도 든다.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라는 제목은 '무지'와 '편견'을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바는 인류는 여전히 '무지'하고 '편견'투성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곳에서부터 시작해 관용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용이 일상어가 되어버린 오늘날이야말로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라는 제목의 뒤에 숨겨진 '관용'이라는 제목을 더욱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동굴에서 살았던 친구들과 동시대인이며 담배와 포드 자동차를 가진 신석기인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암굴 거주민들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해해야만, 그리고 그렇게 이해할 때만, 우리는 미래라는 거대한 산맥 너머에 아직도 숨어 있는 그 목표를 향해서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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