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만나자고 만나자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다가
이번에 정말로 약속을 정하고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영화관에서 <프로듀서스>를 봤다.
그 친구가 자기가 꼭 하고픈게 있는데 들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뭔데?"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는거야."
"제작진 다 나오는 거 보고 있자고?"
"응.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고 싶어."
그래. 좋다. 까짓거 5분이면 되는데 내가 니 소원도 못 들어주랴---영화가 끝이 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우리는 엔딩테마 곡을 들으며 계속 앉아있었다.
그건 솔직히 조금 색다른 기분이었다.
굉장히 사소한 일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엔딩 크레딧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을 감독과 제작진에 대한 배려같기도 했고,
먼저 나가는 사람보다 내가 더 '영화'적이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허영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프로듀서스>는 엔딩 크레딧 다음에도 감독의 깜짝 재치가 독보였지만. 모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서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선물 받은 게 바로 이 [나에게 고맙다].
친구는 서점에서 읽다가 맘에 들었다며 나에게 선물했다.
책 안에 나오는 "영화 엔딩이 다 끝날 때까지 앉아 있기"를 같이 해보고 싶었다고.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휴식 같은 책이라며 내게 건넸다.
평범함 속으로 빠져드는 걸 방지하는 버팀대가 될 것이라고.
그래. 고마워.
친구에게, 그리고 25년간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고맙다.
독특한 느낌의 그림과 짤막짤막하지만 가슴에 깊은 여운을 주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여운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짧은 지침들.
'내게 주는 선물 33가지'이니까
대략 한달에 3번씩 나에게 무언가를 선물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잘 하고 있다고, 토닥토닥 ,
어설프고 좌충우돌에 어이없는 실수의 연속인 아직은 서툴기만한 20대이지만
나를 사랑하고 있고,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참 많은 내가
아주 고맙다고,
봄의 초입에서 마음을 따땃하게 하는 허브티가 생각나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SO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