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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즐겁게


 

     오늘은 농구화 버리는 날이다. 15년이 넘은 내 농구화이다. 잠시 어찔하며 눈물이 핑 돈다. 

     쓰레기 분리 수거함에 넣으려다 가지고 들어왔다. 문득 나이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진다. 한 살 한 살 더 들어갈수록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자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전진만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공부를 오래 했기에 남들에 비해 더욱 바빴다.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갔고 30대 중반까지 공부를 했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결혼도 서른 다섯에야 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에는 이전보다 몇 배나 더 바빠졌다.  

        대학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내 별명은 '운동권'이었다.  많은 시간을 농구장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교수님과 원우들은 농구장에 가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며 나를 운동권이라 불렀다. 땀 흘리고 몸을 부딪히며 농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그 무렵 먹고 자고 씻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 외에 내 생활의 대부분은 농구장과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농구는 어릴 때부터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였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내 손에는 늘 책 아니면 공이 들려 있었다. 

      바빠지면서 농구도 서서히 내 생활에서 사라져갔다. 치열하게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에서 나는 옆을 돌아볼 여유가 많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시간이 모자랐다. '나만의 시간'은 사치였다. 일해야 했고, 벌어야 했고, 윗사람들의 환심을 사야 했고, 뒤쳐지지 않도록 끊임 없이 정보를 모으고 나를 개발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경쟁의 세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전진해야만 했다. 

     시간은 흘렀고 결국 오늘은 내 마지막 농구화를 버려야 하는 날이 되었다.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깟 농구화 한 켤레에 뭐 그리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핀잔을 놓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오늘 매우 슬프다. 어지럽다. 답답하다.

     이제 나는 공을 퉁퉁 튀겨 가며 멋지게 날아 올라 슛을 던질 수 있는 남자가 아니다. 남들보다 높이 뛰어 올라 리바운드를 잡아내거나 쏜살같이 달려가 몸을 뻗어 레이업을 올려놓을 수도 없다. 10년도 더 넘게 공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버렸다.
 
    오랫동안 신발장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내 농구화. 아내의 구박을 견뎌내면서도 언젠가는 신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며 지켜왔던 내 농구화. 신발장에서 가장 덩치가 크지만 가장 긴 시간 동안 주인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내 농구화. 오늘 나는 그 농구화를 버려야만 한다.  

     요즘은 사람이 그립다. 잠시 멈추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마흔이 넘은 지금 브레이크를 한 번 쯤은 밟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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