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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비수기 여행의 낭만과 묘미 : 한겨울의 유럽...
  • 하연래
  • 7,500원 (370)
  • 2020-02-02
  • : 18
유럽의 겨울은 짧다. 오후 4시면 해가 지는데 게다가 춥기까지 하다. 내가 처음 도착한 유럽은 1월 말의 빈. 몸집만한 이민 가방을 끌고 드르륵 드르륵 돌길을 걷자니 인터넷에서 싸게 산 캐리어 바퀴가 견디지 못하고 헛돌기 시작했다. 아직 오후 5시밖에 안 되었는데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거리에 사람은 없고 북역 바로 근처라던 내 숙소는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으로 호기롭게 떠났는데, 정말 이 춥고 삭막한 나라에서 1년이나 잘 지낼 수 있을까?



<비수기 여행의 낭만과 묘미>는 저자가 한겨울 유럽에 다녀와서 쓴 여행 에세이이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국, 아일랜드, 에스토니아를 여행하며 든 단상을 책으로 담았다. 여행 일정 순이 아닌 주제별로 순서를 정해 책을 엮어 앞 장에서는 탈린에 있다가도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는 더블린으로 떠나기도 한다. 전자책으로만 출간되어 지하철에서, 침대에 누워서, 카페에서 음료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로 금방 뚝딱 읽었다.



한장 한장, 겨울 유럽에서만 겪을 수 있는 저자의 경험과 거기에서 오는 단상들이 나를 유럽으로 데려다 놓았다. 나도 겨울에 유럽에 있었지. (물론 나는 사계절 내내 유럽에 있었다.) 나도 겨울에 더블린에 있었고, 런던에 있었고, 빈에 있었지. 아, 탈린에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왜냐면 모든 것이 하얗다. 세상이 순결한 한덩어리였다. 천지합일. 물아일체. 그런데 이것은 구름이 땅을 따라간 게 아니라, 땅이 구름을 닮음으로써 이루어진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구름이 뿌린 눈으로 세상이 구름을 닮게 되었다. 또 다시 말해, 구름이 <자화상>을 완성했다.”

종종 혼자 여행을 감행할 때가 있다. 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듦으로써 사색하고 글 쓸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출발은 늘 여행에 대한 환상이었다. 기차 창 밖으로, 버스의 창 밖으로, 그리고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그 풍경이 주는 설레임이 좋았다. 혼자 턱을 괴고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사연 있어 보이는 듯한(!) 그 순간을 나는 즐겼다.



몇 번의 떠남과 돌아옴 이후에 깨달은 건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고, 생각보다 나는 여행지에서 사색하지 않았고(ㅋㅋㅋ) 글 쓰는 일은 평소보다 더 적었다. 인간관계에 스킬이 필요하듯 여행에도 스킬이 있어야 했다.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금방 지치고 나가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혼자 하는 여행에서 우울에 빠지기는 더 쉬웠다.

“나는 도취적인 상념에 젖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왔지만 결국 일상적인 것이 나를 가장 강렬하게 매료시켰다는 아이러니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떠나간 곳에서 꼭 무언가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의미를 찾아 떠났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지나고 생각하니 단 한 순간, 좋았던 기억 한 번으로도 여행은 기억 속에 남았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꼭 가봐야하는 랜드마크보다 그 날의 따뜻한 햇살이나 갑자기 퍼부어 쫄딱 젖게 만들었던 소나기, 바닷가에 앉아 먹던 젤라또 맛과 아무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했던 날이 보다 더 추억다운 추억이 되었다.



비수기에는 항상 아쉬운 점이 많았다. 오로지 미술관 하나를 보고 날아간 도시에서 비수기를 맞아 때마침 미술관 보수공사를 하는 바람에 허탕을 치기도 했고, 여름에는 훌륭한 휴양지였던 섬이 겨울에 폭풍을 맞아 배가 끊겨 육지와 단절된 채 꼼짝없이 갇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여행함로써만 볼 수 있는 풍경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설경에 폭 쌓여 잠이 든 듯한 고요함, 겨울 아침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포근함, 추위와 바람에 맞서며 오른 절벽 끝에서 만나는 상쾌함. 비수기 여행의 낭만과 묘미는 바로 비수기이기 때문에 생기는, 바로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지 않을까.

“여행의 모든 날이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귤 한 상자를 사놓으면 한두 개 정도는 곰팡이가 슬어 버리게 되듯이, 긴 여행을 한다면 하루쯤 버려야 하는 날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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