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은 제국주의적 맥락에서 태동하여 주로 하층부와 주변부 집단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초기 원주민과 원시 사회를 관찰하던 인류학자들은 점점 연구자의 권력과 위계를 반성하며 성찰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했고, 시선을 타자와 타문화가 아닌 자문화로 돌리게 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현지’는 점점 좁아져 갔으며, 세계화에 따른 새로운 ‘현지’가 등장한 상황이다. 이와 동시에 인류학의 연구대상이 하층부와 주변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할 만하다.
캐런 호(2013)의 월스트리트 연구는 인류학이 수행하는 상층부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호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기록적인 경제 호황을 경험한 것과 동시에 월가에 상당한 인원 감축에 주목했다. 기업의 이러한 기록적인 정리해고에 월스트리트는 환호를 보냈으며, 월스트리트의 축배와 주식회사 미국coporate America은 서로 일정 정도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믿었다.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자신들의 일상에서 문화적 실천을 통해 주식 시장을 지배하는 감성과 금융 규범을 만들었”는지가 호의 주요한 관심사였다(19).
대형 투자 은행들은 성공과 똑똑함을 월스트리트와 결합하는 문화적 연계를 시도한다. 월스트리트는 소위 엘리트 대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채용하는데, 특히 하버드와 프린스턴은 월스트리트의 가장 주요한 인력 공급원이며, 실제로 대다수 학부생은 졸업 후 금융업계에 진출한다. 소수의 엘리트 대학교 출신이 은행을 “오직 하나뿐인 ‘적당한’ 종착지”로 여기게 되는 데에는 동문과 네트워크의 힘, 대학교의 환경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월스트리트의 교묘한 정치가 큰 역할을 한다(76). 그들은 투자 은행이 곧 ‘출세’이며,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시도는 채용설명회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호는 1995년 골드만 삭스의 채용설명회에 참여했으며 이를 자세히 묘사한다. 설명회는 호텔 연회장에서 열렸으며,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을 비즈니스 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반겼다. 고용주들은 월스트리트의 고층 건물과 양복 차림의 노동자들, 화상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후 학생들과 같은 엘리트 대학교 출신의 관리부장이 단상에 올라와 ‘똑똑한 두뇌’를 가진 ‘다섯 개 대학교 출신’의 학생들을 잔뜩 추켜세웠다. 학생들은 고급 호텔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으며 금융 업계의 ‘라이프 스타일’, 즉 상층부의 아비투스를 내면화한다.
프린스턴 대학원을 다니던 호 역시 이러한 채용 과정을 통해 뱅커스 트러스트의 내부 관리 컨설턴트로 임명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월스트리트에 발을 들였으나 실상 애널리스트들에게 배당되는 것은 “가로세로 180센티미터의 자리” 뿐이다(133). 호는 실제로 지독하게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투자 은행들의 노동 환경을 “화이트칼라 노동 착취 공장”이라고 묘사한다(132). 애널리스트들은 주당 110시간 이상 일하며 고된 노동을 당연히 여기고,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며 건강을 해친다. 인간관계를 정상적으로 꾸려나가기 어려워 연인과 멀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은행 밖에서 바라보던 수평적이고 유연해 보이던 노동 환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착취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은행으로 끌어들였던 ‘똑똑함’의 신화로 또다시 정당화된다. 투자 은행 직원들은 스스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일반 노동자’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진 ‘똑똑함’은 고된 노동과 결합하며, “금융 시장에서 자신들이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는 원동력이자 정당한 이유”가 된다(161).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 은행 직원들은 만연한 고용불안과 해고를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주주 가치’라는 명목으로 거대한 구조 조정이 종종 진행되었다. 기업은 대량의 구조 조정을 통해 일시적으로 주주 가치를 올렸지만, 이러한 만행이 결국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려 불평등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화이트칼라 노동 공장에서 재사회화를 경험한 투자 은행 직원들은 불평등한 구조가 계속해서 재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주주 가치를 향한 믿음을 계속 유지했”으며, 일부가 주주 가치에 의문을 던질지라도 여전히 “자신들이 맡은 사명의 정당성과 ‘시장’에 관한 믿음과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198). 월가의 ‘문화적 세뇌’는 직원들의 ‘문화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주주 가치, 능력주의 문화, 세계화 신화가 지독한 모순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고용불안에 떨며 유동하는 삶을 사는 대형 투자 은행 직원들은 다양한 모순을 외면한 채 – 혹은 인식하지도 못한 채 – 지속 불가능한 금융 시장에 몸을 던진다.
호는 1997년부터 3년 동안 인류학의 불모지였던 투자 은행을 누빈다. 그는 상층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사회경제적 네트워크와 친족, 가족, 그리고 엘리트 대학교의 연줄을 활용했으며, 대형 은행들이 대학교에서 실시한 채용설명회를 통해 금융업계에 진출하게 된다. 투자 은행 뱅커스 트러스트의 ‘내부 관리 컨설턴트’로 일하며 금융 업무와 그에 따른 관행을 배웠으며, 구조 조정 대상이 되어 감원된 이후 약 17개월 동안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컨설턴트 업무를 통해 젊은 투자 은행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업무 시간 외에 사교 활동을 통해 넓힌 월스트리트 인맥은 이후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는 자신이 연구한 금융 시장의 고용 불안정을 직접 경험한 셈이다. 뱅커스 트러스트의 관리 컨설턴트로 채용된 지 겨우 6개월 만에 감원 대상이 되었는데, 그가 주주 가치를 떨어뜨리는 고정 비용이라는 것이 해고 사유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여러 난관을 넘어서며 월스트리트의 생활 세계에 접근했는데, 이를 “휴 거스터슨이 ‘다형적 관여’라고 부르는 연구 방식하고 흡사”했다고 이야기한다(39). 거스터슨의 다형적 관여와 호의 월스트리트 연구는 인류학이 어떻게 상층부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거스터슨에 따르면 상층 연구는 참여 관찰에만 의존하기 어려우며, 여러 방식으로 갖가지 출처에서 획득한 다양한 자료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호는 거스터슨의 주장처럼 단순히 현장 공동체뿐 아니라 현장 바깥에서 다양한 정보원을 만난다. 현지조사는 참여 관찰보다 동료들의 인터뷰, 따라다니기, 업계 회의 참여, 공식적 행사와 비공식적 사교 행사 등에 의존하여 수행됐다.
거스터슨이 상층부 연구 방식을 제시하고, 호가 이를 구체적인 인류학적 연구로 보여주고 있음에도 상층부 연구에는 여전히 문제가 하나 남아있는데, 바로 인류학자가 가진 권력이다. 호가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 은행이라는 상층부를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연구자 자신이 일정 정도 상층부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엘리트 대학교 출신이었고, 친족과 동료의 연줄을 통해 금융업계와 투자 은행 직원들에 쉬이 접근할 수 있었으며, 엘리트 대학교 출신이 아니라면 꿈도 꾸기 어려운 현지에 직접 들어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하층부와 주변부를 연구했던 인류학자가 가진 권력과 조금 다른데, ‘권력자’인 연구자가 바라본 대상은 자기와 동등한 위치의 또 다른 ‘권력자’이며, 어쩌면 이 과정에서 상층부 연구자들은 자기 자신이 가진 권력을 불편하게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권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이를 통해 상층부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는 계속 고민해야 하는 지점으로 남아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