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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 빨강 머리 여인
  • 오르한 파묵
  • 12,600원 (10%700)
  • 2018-06-29
  • : 54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읽은 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리뷰를 적는다고 하니 기억이 되살아날지 의문이다.

 

오르한 파묵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기를 푼 서양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동양의 뤼스템(아버지)과 쉬흐랍(아들)의 페르시아 고전이야기를 작품의 현실에 녹아내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문학성,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까지 고루 갖춘 스토리텔러로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들에게 그러하듯 아무도 아들 없는 아버지를 따스하게 껴안지 않는다.’-페르도우시, 『왕서』

 

 

 

 

2

우물 파는 실력자 마흐무트 우스타, 그의 10대 조수 젬, 젬에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젬은 왼괴렌에서 아버지를 대체할만한 부성애를 느낀 마흐무트 우스타를 만난다.

 

“조수를 믿지 못하면 우물 파는 명수가 될 수 없단다. 명수는 지상에 있는 아이가 모든 것을 옳고, 반듯하게, 제시간에, 주의 깊게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일에 열중할 수 있지. 살아남으려면 우물 파는 사람은 아들을 믿는 것처럼 조수를 믿어야만 한다. 나의 스승이 누구였는지 알아?”

 

“나의 스승은 나의 아버지였어. 너도 유능한 조수가 되고 싶으면 내 아들이 되어야 한다.”

 

마흐무트 우스타에 의하면 스승인 명수와 조수 사이에 갖는 관계의 비밀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든 스승은 아버지처럼 조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조수에게 유산으로 남기 때문이다.

(65p)

 

 

명수와 조수의 관계는 더 끈적끈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명수의 생명이 조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물 파는 일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3

하지만...

왼괴렌에서 만난 마흐무트 우스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또 다르게 결정짓게 할 ‘빨강머리 여인, 귈지한’도 만나게 된다. 10대 소년의 가슴에 첫사랑의 불을 지핀, 빨강머리 여인.

 

1부의 이야기는 이랬다.

 

 

 

 

4

2부에서 젬은 자신 고향 땅을 떠나 왼괴렌에서 만난 우스타와 귈지한이 앞으로 어떤 인생으로 이어질지 작가는 드문드문 불안한 신호를 보내준다.

 

“최선의 방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176p)

 

마흐무트 우스타 덕분에 지질학을 공부한 젬은 연인 아이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5

페르시아의 고전에 등장하는 뤼스템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연결된다.

 

뤼스템은 이란에서 탁월한 영웅이자 용장이었고 전사였다. 모든 이들에게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한다. 어느 날 뤼스템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며칠을 헤매다가 적국의 땅인 투란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유명세는 이미 그곳에서도 퍼져있었기에 그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뤼스템이 식사를 마치고 방에 왔을 때 투란 왕의 딸인 타흐미네가 잘 생긴 뤼스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름난 영웅이자 영리한 뤼스템의 아들을 낳고 싶다고 애원한다. 뤼스템은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눈다. 아침에 뤼스템은 태어날 아이에게 자신이 주는 징표로 팔찌 하나를 놓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타흐미네는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 쉬흐랍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장성한 쉬흐랍에게 아들의 아버지가 뤼스템이라고 일러준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이란으로 떠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란? 전설적인 전사 뤼스템과 아들 쉬흐랍은 전장에서 서로의 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물론 갑옷을 입었고, 부자는 마치 오이디푸스와 그 아버지처럼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셋째 날 결투에서 뤼스템이 아들을 땅에 눕힌다.

 

 

 

 

6

서양의 신화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동양의 고전의 주인공, 뤼스템은 아들을 죽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작가는 아주 특별한 해석을 한다.

 

‘오이디푸스의 죄악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신이 그를 위해 정한 운명에서 도망치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식으로 해석하자면 뤼스템의 죄악 역시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룻밤의 정사로 아들이 생겼고, 이 아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죄책감에서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어 벌을 주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관객들은 그가 신이 부여한 운명에 맞섰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똑같은 논리로 생각하면 아들을 죽인 뤼스템도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동양 이야기의 결말에서 아버지는 벌을 받지 않고 우리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그 누구도 동양인 아버지를 벌하지 않을 것인가?’(213p)

 

작가는 끊임없이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의 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무언가 터질 듯 한데 터지지 않는 이야기꾸러미...

 

 

 

7

‘오이디푸스와 쉬흐랍을 서로 그렇게나 형제처럼 닮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부재와 아버지를 찾는 안타까움이다...어쩌면 내가 나의 아버지를 원한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성의 한 구석에서 갈수록 작아지는 어떤 사람이 세상의 한 끝에서 다른 끝을 향해 우물을 파고 있었고, 때로 다른 옷을 입고 내 꿈속에 들어와 이야기를 해 주었다.’(221p)

 

젬과 아이쉐는 아이가 없었다. 그들은 ‘쉬흐랍’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다.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나는 아이쉐에게 말한다. ‘이 왼괴렌 마을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동화처럼 불운이 감도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이곳에서는 일단 건축 일은 하지 말자고. 그곳에서 가장 좋은 경치는 분명 별들로 반짝이는 밤하늘일거야.’(239p)

 

 

집을 나가 사라진 아버지, 아버지로 대체하고 싶었던 우스타, 사랑하는 아내 아이쉐와 세운 ‘쉐흐랍’, 그리고 계속 떠나지 않는 왼괴렌, 그리고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빨강머리 여인, 궐지한...

 

‘우리 아이가 없고, 내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것이 주인 없이 남겨지기 때문일까? 울적해질수록 아이쉐와의 우정에 의지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충실함이 강하고 영리한 영자와 가까이 있고 싶은 나의 필요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아이쉐는 직감했다. 내가 그녀를 절대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감추는 정신적으로 은밀한 삶, 바람, 비밀이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쉬흐랍의 사무실에서 서로를 한 시간 이상 보지 못하면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어 “어디 있어?”하고 물었다. 이 친밀함이 부여하는 자신감과 암암리에 느끼는 일종의 자만심은 2013년 초 쉬흐랍에 큰 피해를 안기는 실수의 원인이 되었다.’(265p)

 

 

 

8

‘빨강 머리 여인을 다시 만나고 싶은지, 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이 그 아이와 친해지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우리가 평생을 오이디푸스 왕과 뤼스템과 쉬흐랍에 얽힌 이야기와 해석들을 조사한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277p)

 

 

9

“아버지 없이 자라면 세상에 중심부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삶에서 어떤 의미를, 어떤 중심을 찾으려 애쓰죠. 당신에게 아니다라고 말해 줄 누군가를 말이에요.”(305p)

 

“현대인은 도시의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의미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찾는 것도 사실은 쓸데없습니다.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개인이라면 도시의 군중 속에서 아버지를 찾지 못할 겁니다. 찾는다면 이번에는 개인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프랑스의 현대성의 선구자 장 자크 루소는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네 명의 자녀가 현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부러 그들을 떠났고,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자녀들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찾지 않았지요. 당신도 내가 현대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떠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옳았네요.”(319p)

 

 

아버지와 아들의 연대감, 관계는 어김없이 어그러진다. 오이디푸스 신화도, 뤼스템과 쉬흐랍의 이야기도, 그리고 파묵이 보여주는 젬의 이야기도.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상징할 수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복종했더라면 행복했을까?”

“어쩌면 좋은 아들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진정한 나는 될 수 없었을 거야.”

 

“그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안달복달 때문에 유럽을 선망하는 우리 부자들은 개인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 되지 못했다고. 유럽 스타일의 터키 부자들은 신을 믿지 않아. 왜냐하면 자신들이 무엇이나 되는 거처럼 생각하니까. 그들에게 개성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 대부분이 오로지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을 믿지 않는 쪽을 선택해. 심지어 신을 믿는다는 말조차 하지 않지. 하지만 믿음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되는 거야. 종교는 겸손한 사람들의 천국이며 위로라고.”(321p)

 

 

 

 

10

현대는 이미 신을 버린 세대이고 시대이다. 신을 버리고, 신을 죽인 세대이다. 아버지와 같았던 신을 버린 이 시대를 상징하는 젬, 아버지 없이 자란 젬, 엔베르, 상처는 상처를 낳고, 데미지는 데미지를 낳고, 아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무기를 가지고 간 아버지가 오히려 화를 당하고야 만다. 내가 이야기를 두리뭉실하게 접근한 것은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서이다. 이전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란 이야기를 했던가!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자기 존재 안에서 찾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요, 미덕임을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전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 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아버지 없이 지낸 삶에서 축적되고 누적된 분노와 화는 결국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결국 의도치 않게 아버지를 공격하고야 마는 신화와 현실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오르한 파묵! 엄청난 이야기꾼이구나!

 

 

 

신화와 고전과 현실이 마구마구 뒤섟이면서도 결코 흥미와 재미를 놓치지 않게 하는 오르한 파묵의 이 소설은 너무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정말 이렇게 써야 한다. 근데 『빨강머리 여인』과 『내 이름은 빨강』은 다른 작품이란 것을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빨강’이 들어갔다고 다 똑같은 내용의 작품이 아니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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