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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점 지하 대피자들
- 전예진
- 16,200원 (10%↓
900) - 2026-01-27
: 930
#매점지하대피자들
#전예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책 후기
“혹시 뭐가 잘 안 되면, 적강산 고라니 매점으로 와요.”
처음 <매점 지하 대피자들> 알게 되었을 때 만난 문장이다.고라니의 당찬 울음소리처럼 내 걱정과 고민을 날려줄 것 같은 매점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전혀 아니었고, ‘왜 고라니 매점일까’라는 질문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우가 왜 고라니 매점에 가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어느새 적강산 고라니 매점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은 채 도착한 매점 지하의 ‘호텔’. 그러나 그곳의 어메니티는 헤드랜턴과 야전삽이었다.
숙박 공간은 직접 굴을 파서 만들어야 하고, 몇 가지 규칙이 존재하는 고라니 호텔. 선우는 그곳에서 어찌저찌 살아가기 시작한다.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어 했지만, 선우보다 먼저 굴 속에 살고 있던 혜원, 영수, 재경을 만나며 그곳에 계속 머물게 된다.
이 소설은 화려하다고 말하기 엉렵다. 고라니 매점 지하 호텔에서 만난 선우, 혜원, 영수, 재경. 이 네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잘못된 관계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 역시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굴에 숨어버리고 싶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멈춰 있었기에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틈’이 생겼다. 라운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 풍경이 전부인 것처럼 마음이 놓였던 선우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더이상 잘못된 관계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과 서로 돌보고, 힘을 합치며 만들어지는 고라니 (호텔) 공동체의 모습을 흐뭇하게 다가왔다. 서로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지금 무엇을 할지 함께 고민하고 응원하는 공동체.
책을 덮어갈수록 ‘왜 고라니 매점일까’에 대한 나만의 답도 떠올랐다. 고라니는 보호받는 야생동물이면서도 농작물 피해로 인해 혐오와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문제로 취급받는 존재. 굴 속에 사는 이들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일상적인 ‘매점’이라는 공간의 ‘지하’에서, 세상의 시선을 피해 각자의 이유로 대피해 있는 고라니 같은 사람들. 그래서 고라니 매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갈수록 급작스런 인물들의 등장에 놀라기도 했고, 이내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의 반영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이러면 안된다’의 ‘이러면’의 기준이 무엇일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이들이 ‘잘 살기를’기대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덮고 나니 왜 조마조마 했을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되묻게 되었다. ‘잘 산다’는 기준을 내 마음속에서 이미 만들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불편했던 건 아닐까.
굴 속의 이들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대피하고 싶었던 잘못된 관계와 믿음은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옳다고 믿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요즘 ‘쉼 청년’, ‘쉬었음 세대'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한다. 이 단어 자체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이들을 다시 사회로 끌어 당겨 경제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정책의 목표가 되는 사회가 오히려 청년들을 더 깊은 굴 속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로 규정하기 보다, 무엇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숨을 고르기 위해 굴에 들어가든, 어디에 있든, 그 선택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몇가지 뽑아본 문장
“우리가 어디서 뭘 하든,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로 남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기억으로."
“잘될 거에요,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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